[우리 동네 콘서트] "태어나 처음 본 음악회가 우리학교 마지막 음악회"

  • 통영 사량도=김기철 기자

입력 : 2010.10.12 03:06

통영 사량도 물들인 클래식 선율
곧 문닫는 분교 옆에서… "45분 너무 짧다" 아우성

슬리퍼를 벗고 돗자리에 올라앉은 주민들이 가벼운 역정을 냈다. "시간이 됐는데, 왜 꾸물거리고 안 나와!"

11일 오후 2시 30분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40분 거리인 사량도의 내지마을. 부두에서 내려 차로 15분쯤 더 들어가야 하는 마을 입구 쉼터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조선일보가 올해 펼치는 '우리 동네 콘서트'의 하나로 통영국제음악제 상주단체인 TIMF 앙상블 단원 5명이 사량도를 찾은 것이다.

300년 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 주민들이 둘러앉았다. 전교생이 세 명인 사량초등학교 내지분교생도 '전원' 참석했다. 허철(첼로)·전민경(오보에) 듀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영감을 얻어 만든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연주한 데 이어, 통영 출신인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플루트 독주 연습곡이 이어졌다. TIMF 앙상블 이사인 김승근 서울대 교수가 "대금 소리를 본떠 만들었다"고 해설하자 50여명의 청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53년 전 사량도로 시집왔다는 노말례(73)씨는 "클래식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듣기는 처음"이라며, '섬집아기'를 편곡한 앙코르곡이 나오자 노래를 따라불렀다. 내지분교 6학년 종범(12)이는 마지막 졸업생이 될 것이다. 1947년 문을 연 학교가 넉 달 뒤면 학생 부족으로 문을 닫기 때문이다. 종범이는 "태어나서 처음 본 음악회가 신기하다"며 "학교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전교생이 세 명뿐인 사량초등학교 내지분교 옆 마을 쉼터에서 열린‘우리 동네 콘서트’. 내지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열린 클래식 연주회에 동네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사진작가 최명만씨 제공

음악회는 한 시간 뒤 사량중학교에서 또 한 번 열렸다. 전교생 30명인 이 학교에 100명이 넘는 청중이 몰려들었다. 김용우 사량면장이 "마을에서 처음 열리는 음악회에 많이 참석해야 한다"며 주민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근처 사량초등학교 본교생 20여명도 가방을 멘 채 운동장에 앉았다. 학교 현관에 마련된 즉석 무대에 TIMF 앙상블이 올랐다.

17세기 작곡가 파헬벨의 캐논이 울려 퍼지자 밀짚모자에 몸뻬 바지 차림인 주민들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작곡가 이영조가 편곡한 '엄마야 누나야'로 45분가량의 음악회가 마무리되자 "너무 짧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윤건호 TIMF 앙상블 이사장은 "섬이나 탄광촌 같은 오지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리 동네 콘서트'는 서울시향이 공동주최하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메세나협의회·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