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0.07 03:04
'10번 교향곡' 국내 초연하는 흑인 지휘자 드프리스트
스물 여섯, 벼락 같은 소아마비… 휠체어 타고 콩쿠르 우승, 번스타인에 발탁돼 이름 날려
경영학 분야 최고로 이름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졸업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어느 날 벼락 같은 선고를 받았다. 소아마비 때문에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스쿨 진학을 고민하다가 막 음악가로 꿈을 돌린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는 인종차별과 싸워야 하는 흑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재기했다. 2년 뒤인 1964년 미트로풀로스(Mitropoulous)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뉴욕 필의 거장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이후 스웨덴 말뫼 교향악단, 몬테카를로 필하모닉, 오리건 교향악단 음악감독 등을 거치면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소아마비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착오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당시엔 놀라고 힘들었지만 어려서부터 행복을 많이 누렸기에 하나님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요."
5일 만난 제임스 드프리스트(DePreist·74)는 낙천적이었다. 그는 세상이나 운명을 탓하지 않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가 워낙 잘해 주셔서 남을 원망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드프리스트는 여섯살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최고의 알토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리안 앤더슨(Anderson·1902~1993)의 조카이다. 앤더슨은 워싱턴 컨스티튜션홀 연주를 예정했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 취소를 통고받았다. 앤더슨이 항의 표시로 워싱턴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가진 야외연주에는 7만5000명이 모여들었다. 드프리스트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부지휘자로 있던 1971년 컨스티튜션홀 공연에 앤더슨을 초청했다. "난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인데…." 앤더슨은 무척이나 감격했다.
2008년 10월 서울시향의 러시아 명곡 시리즈를 지휘했던 드프리스트는 7일 말러 교향곡 10번의 국내 초연을 이끈다. 지난 8월 정명훈이 지휘한 2번 '부활'에 이어 말러 시리즈 두 번째다. 드프리스트는 "필라델피아 필하모닉과 세 번, LA 필하모닉과 네 번, 오리건 심포니 등 10여 차례 이 곡을 연주했다"고 했다.
말러는 교향곡 10번의 1악장만 관현악 총보를 완성했고 나머지는 스케치에 해당하는 약식 총보만 남겼다. 오늘날 말러 교향곡 10번은 음악학자 데릭 쿠크가 1960년부터 보완해온 악보를 연주한다. "말러 10번이 듣기 힘들다고요? 1악장은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2악장은 기존의 말러 스타일과 다릅니다. 3악장은 유쾌하고, 4악장은 춤곡 같으며, 5악장은 미스터리 소설의 결말처럼 긴 시간 참아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지요."
드프리스트는 "말러 10번의 1악장만 말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데릭 쿠크가 완성한 악보는 말러가 직접 쓴 것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는 말러 교향곡의 인기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말러는 다음 악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는 게 특징입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였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고 또 산들바람이 불고…. 조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 아닌가요?"
▶서울시향 말러 시리즈 2, 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8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