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0.01 15:43

아이디어 바닥난 작각
해결책은…“PD, 나랑 연애해”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그동안 너무 잘나갔던 드라마작가가 있다. 그러나 재능으로 인정받던 그의 집필력이 한계에 봉착한다. 더 이상 한 줄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본을 독촉하는 방송국 PD가 들이닥치고 피를 말리는 시간은 또각또각 잘도 간다. 하지만 대작 완성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다. 비장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해결책이란 것이 ‘좀 그렇다’. 원고를 받으러온 PD에게 멜로드라마의 스토리 전개를 위해 사랑을 강요하는 거다. 말 주고받기로 성적인 암시를 하거나 불합리하고 엉뚱한 상황 설정이 특징인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 한 편이 화제다.
급조될 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극을 향해 치닫는 이른바 ‘막장드라마’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연극 ‘연애희곡’은 대중성을 얻고 있는 인기 드라마작가의 허점투성이 집필과정을 까뒤집듯 보여준다.
쓰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 드라마작가에게 슬럼프가 왔다. 그래서 무작정 연애를 해보기로 한다. 때마침 원고를 독촉하러 온 PD에게 “나와 연애를 하지 않으면 대작이 나오지 않는다”며 협박성 제안을 한다. 그렇게 억지스럽게 전개돼가는 과정 속에서 대본은 한 장씩 만들어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망가지는 현실의 엽기적인 상황은 그대로 대본에 옮겨진다.
연극은 극 속의 극을 복잡하게 오간다. 현실의 세상, 작가가 써내려간 극본 속의 세상, 극본 속의 작가가 쓰는 극본 속의 세상. 등장인물은 같지만 상황에 따라 캐릭터가 바뀐다. 배우들은 같은 배역을 맡아 3명의 인물을 표현하며 현실과 이상 혹은 상상 세계를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연애담론 또한 독특하다. 작품 속 작가나 등장인물이 말하는 사랑은 솜털처럼 가볍다. 셰익스피어 식 비극이나 운명적 사랑,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의 특별한 의미도 없다. 현실과 극본 속 작가들은 그저 마음에도 없는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데 급급하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성적 논쟁은 거리낌 없고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심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까지 흔들어놓는다.
작가는 일과 연애, 또 생활의 중간 지점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했지만 그다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막장 끝에 발견하는 사랑의 진정성 운운은 어쨌든 해피엔딩이지만 여러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작가 역은 배우 이지하와 배해선이 맡았고, PD 역은 도이성과 전동석이 맡아 번갈아 연기한다. 이밖에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며 코믹한 분위기를 주도한 매니저 역의 김성기를 비롯해, 김재만, 김대원, 송유현 등이 출연한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31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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