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북치는 고양예고 무용과 아이들 "프로 뺨치네"

  • 최종석 기자

입력 : 2010.09.29 22:54

서울드럼페스티벌에 유일하게 초청받아
무용에 리듬 불어넣자 무용실력도 쑥쑥늘어… 각종대회 수상 휩쓸어

27일 오후 6시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고양예술고등학교. 실기 연습실이 모인 5층짜리 기봉관(氣峯館) 건물이 전쟁이라도 난 듯 마구 울렸다.

"어이! 어이! 아싸!"

230㎡(약 70평)짜리 무용 연습실에 들어서자 검은색 한복 치마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학생 29명이 소리를 지르며 북을 두드렸다. 북 4개를 붙여서 만든 '모듬북'을 맡은 여학생은 방방 뛰어 오르며 온몸으로 북을 내리쳤다. 빠른 손놀림으로 오고무(五鼓舞)를 추는 여학생 11명의 움직임에는 빈틈이 없었다. 흠뻑 젖은 티셔츠 위로 반짝이는 두 눈은 신 들린 듯 웃고 있었다. 지름 1.5m짜리 대고(大鼓)가 '쿵' 울리자 이번에는 앞쪽에서 장구를 치던 7명이 우르르 복도로 달려나가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230㎡의 공간으로도 부족한 춤과 북이 뒤섞인 퍼포먼스, 공기까지 울렁거리는 연습이 9시까지 계속됐다.

27일 저녁 고양예고 무용 연습실에서 무용과 학생 29명이 교사 김유미(오른쪽)씨와 함께 북을 두드리고 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서울에서 더 유명한 고양예고 북치는 무용과

이들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휠체어농구대회 개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고양예고 무용과(한국무용 전공) 1·2학년 학생들이다. 2007년부터 무용에 리듬을 불어넣기 위해 틈틈이 타악기를 배웠던 이들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레퍼토리를 짜고 타악 공연에 나서고 있다. 무용과 교사 김유미(39)씨와 전통타악연구소 소장인 방승환(51)씨가 의기투합하면서 한국무용과 전통타악을 섞은 새로운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고양예고 북치는 무용과는 서울에서 더 유명하다. 지난 25일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서 열린 서울드럼페스티벌에서는 관객 7000여명을 앞에 두고 개막 공연을 했다. 축제에 초청받은 국내외 35개 팀 중에서 유일한 아마추어인 고양예고 팀이 첫 공연을 맡은 것이다. 지난해 서울드럼페스티벌 타악경연대회에 출전해 노력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출전한 18팀 중에서 나홀로 아마추어였다. 김현희(17)양은 "서울에서 열리는 큰 공연에 서울 학교는 물론 프로 팀 대신 우리가 설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

무용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프로 타악팀 뺨치는 북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방학을 불문하고 학생들과 함께 장단을 맞추고 있는 두 선생님의 헌신 덕이 크다. 김씨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가슴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요. 이 순간을 위해 아이들이 한 고생을 알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방씨는 "조용했던 아이들이 북채만 잡으면 표정이 싹 변해요. 열정적인 아이들 때문에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개량악기를 이용해 새로운 퍼포먼스를 재창조한 무용과는 우리뿐"이라고 했다.

이들의 애정에 학생들도 흥이 난다. 방학 때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하루종일 북을 치고 춤춘다. 임은지(17)양은 "공연을 앞두고 어깨가 마비돼 침을 맞으면서 연습했어요. 그런데 수업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대고를 맡고 있는 권영성(17)군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배어 곰 발바닥이 다 됐죠. 살이 6㎏이나 빠져 다이어트 걱정을 덜었어요"라고 웃었다.

지난 25일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서 열린 서울드럼페스티벌에서 고양예고 무용과 학생들이 개막 공연을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리듬을 타면서 무용실력도 늘어

처음에는 자정이 넘도록 북을 치면서 '민원'도 많았다. 위층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다른 과 학생들에게는 북소리가 소음이었다. 무용과에서 북을 가르친다고 걱정하던 학부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학부모와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응원하고 있다. 학생들이 입시 위주의 레슨에서 벗어나 본능적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서 무용 실력도 배가 됐기 때문이다. 고양예고 무용과 학생들은 지난해 한양대·성균관대·중앙대·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주최한 각종 무용대회에서 무더기 수상했다. 국내 최고의 국악대회인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문에서 장원상을 타기도 했다. 장구나 북 등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도 덤이다.

지난 17일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열린 무용과 정기공연에는 학부모·학생 등이 몰려 1800여석 전석이 가득찼다. 지금까지 300여석 규모의 학교 극장에서 열던 것을 올해 처음 더 넓은 곳으로 옮겨 치른 것이다.

김성기(52) 교감은 "최근 우승한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최덕주 감독이 '즐기면서 뛰어야 창의적인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요. 무용도 즐거워야죠. 힘들지만 항상 표정이 밝은 학생들을 보면 상을 탔을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