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9.30 03:01
신작 '적도 아래…' 쓴 극작가 정의신
日軍에 끌려가 패전 후 戰犯으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사람들
南方에서 반딧불이는 죽은 이 영혼 안타까운 젊음이 무수히 날아올랐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의 감동이 다시 밀려올까. 재일교포 가족의 출렁이는 인생을 포착한 이 드라마로 지난 2008~2009년 일본의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던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53)이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징집당했다가 패전 후 전범(戰犯)으로 몰렸던 조선 사람들의 비극을 다룬 '적도(赤道) 아래의 맥베스'다. 서울에서 갖는 세계 초연(연출 손진책)에 앞서 한국에 온 정의신은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연극은 2010년 태국의 한 기차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열린다. 85세의 김춘길(서상원)이 일본군 소속으로 연합군 포로를 감시했던 과거를 증언한다. 조선에서 데려온 3016명의 감시원 중 148명이 전범 판정을 받고, 그중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과거 역사가 불려나온다. 정의신은 "두 번 사형 선고를 받고 두 번 사면된 이학래(85)씨가 김춘길의 모델"이라며 "이 희곡을 쓰며 이학래씨를 만났는데, 겪은 풍파와 달리 온화한 표정이라서 더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연극은 2010년 태국의 한 기차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열린다. 85세의 김춘길(서상원)이 일본군 소속으로 연합군 포로를 감시했던 과거를 증언한다. 조선에서 데려온 3016명의 감시원 중 148명이 전범 판정을 받고, 그중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과거 역사가 불려나온다. 정의신은 "두 번 사형 선고를 받고 두 번 사면된 이학래(85)씨가 김춘길의 모델"이라며 "이 희곡을 쓰며 이학래씨를 만났는데, 겪은 풍파와 달리 온화한 표정이라서 더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무대는 1947년 싱가포르의 형무소와 2010년 태국을 왕복한다. 춘길을 비롯한 조선인 사형수들은 죽음 앞에 절망하면서도 좁쌀 같은 희망을 나눈다. 사형집행 전야(前夜)엔 감옥에서 우유로 건배를 하고 즉흥극 '맥베스'를 올린다. 왜 하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일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인물이니까요. 나약하고 가련하죠."
정의신은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태어났다. 일본 태생인 부모님은 고물상을 했고 어린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열네 살에 일본으로 건너온 외할머니는 고향에서 보낸 소녀 시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외손자가 "고향에 가고 싶어?" 물으면 "가도 아무도 없는걸…"이라고 중얼거렸다. 정의신은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삶을 향한 시니컬한 시선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인물이니까요. 나약하고 가련하죠."
정의신은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태어났다. 일본 태생인 부모님은 고물상을 했고 어린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열네 살에 일본으로 건너온 외할머니는 고향에서 보낸 소녀 시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외손자가 "고향에 가고 싶어?" 물으면 "가도 아무도 없는걸…"이라고 중얼거렸다. 정의신은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삶을 향한 시니컬한 시선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서 한 조선인 사형수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어머니, 단지 과거만이라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정의신은 "연극의 역할 중 하나가 기록이므로 나는 계속 써 나갈 것"이라면서 "이번 작품은 전쟁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했다.
정의신의 연극에는 음식과 귀신이 꼭 등장한다. 그는 "먹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며, 그 풍경은 때론 웃기고 때론 슬퍼진다"면서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고추를 먹는 대목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귀신에 대해서 묻자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라고 눙쳤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당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때 펑펑 쏟아지는 벚꽃으로 닫힌다. 이번엔 하강이 아닌 상승이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엔딩에서 무수한 반딧불이가 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남방(南方)에서 반딧불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 춘길은 먼저 떠난 친구들을 올려다보듯 밝게 말한다. "살아 있어요. 난 살아 있어…."
▶10월 2~1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정의신의 연극에는 음식과 귀신이 꼭 등장한다. 그는 "먹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며, 그 풍경은 때론 웃기고 때론 슬퍼진다"면서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고추를 먹는 대목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귀신에 대해서 묻자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라고 눙쳤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당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때 펑펑 쏟아지는 벚꽃으로 닫힌다. 이번엔 하강이 아닌 상승이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엔딩에서 무수한 반딧불이가 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남방(南方)에서 반딧불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 춘길은 먼저 떠난 친구들을 올려다보듯 밝게 말한다. "살아 있어요. 난 살아 있어…."
▶10월 2~1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