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뮤지컬 시장 침체의 이유

  • 스포츠조선 김형중 기자

입력 : 2010.09.28 18:45

오페라의 유령

한국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빨리 빨리'가 있다. 굳이 부연설명할 필요도 없다. 식당만 가봐도 알 수 있으니까.

과거엔 이 '빨리 빨리'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긍정적인 측면을 포착하려는 시각이 늘고 있다. '빨리 빨리' 덕분에 좋아진 것도 많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경제발전이다. 서양에서 100년 걸린 것을 우리는 2030년 만에 해냈다.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는 '후발국의 이점'을 100% 활용했다. 성실함과 좋은 두뇌 그리고 '빨리 빨리' 마인드가 바탕이 됐다.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은 '빨리 빨리' 노력한 덕분이다.

우리 뮤지컬 업계 역시 '빨리 빨리' 마인드에 힘입어 풍요로워졌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001년의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초연이었다. 그 전까지 국내 시장은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물론 남경주 최정원 등 걸출한 스타들이 있었고 '명성황후'(1995) 같은 수준 높은 창작뮤지컬도 배출했지만, 일반 대중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낯선 장르였다. 외국 뮤지컬로는 '아가씨와 건달들' '넌센스' 등이 주기적으로 공연하는 정도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 뮤지컬의 지형에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컨텐츠로 꼽히는 대작이다. 일반인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의 관객들은 마침내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브로드웨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 해 9개월 동안 장기공연되며 24만명을 동원하는 성과를 냈다.

'오페라의 유령'을 계기로 국내 제작사들의 수입경쟁이 불붙었다. 창작뮤지컬의 완성도가 부족한 상황이라 외국의 유명 브랜드들이 타깃이 됐다.

그 결과 '오페라의 유령'과 더불어 이른바 '4대 뮤지컬'로 불리는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를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뿐아니다. '시카고' '렌트' '맘마미아' '지킬 앤 하이드' 같은 화제작, 디즈니 뮤지컬의 간판인 '라이온킹'과 '아이다'도 줄줄이 수입됐다.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2005년 무렵엔 미국의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신작도 서울에서 '동시 상연'됐다.

영미권에서 물량이 달리자(?)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뮤지컬까지 물밀 듯 들어왔다. 서양에서 40, 50년에 걸쳐 만든 작품들이 10년 동안 정신없이 쏟아진 것이다. 팬들의 눈과 귀는 행복했지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2,3년전부터 뮤지컬시장을 덮친 한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2006년 무렵까지 대규모로 유입됐던 자본이 빠져나간 것이 크고, 지난 10년간 형성된 '공급과잉'의 구조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팬들의 기대치는 높아졌고, 더이상 들여올 작품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공급과잉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몇몇 문제들 때문에 지난 10년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빨리 빨리' 마인드 덕분에 뮤지컬 시장의 외연은 확대되었고 창작뮤지컬은 다양한 자극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난 10년의 성과가 참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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