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9.27 23:12
소악루에서 보는 남산은 난지도에 가려 안 보여…
"겸재가 그렸던 서울 곳곳의 풍경 문화 콘텐츠 활용 충분"
"여러분이 지금 걷는 이 길은 겸재 선생도 밟았던 길입니다. 한 발, 한 발 의미를 되새기면서 걸어보세요."
지난 17일 겸재정선기념관 주최로 '진경산수화의 완성자'인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작품 속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가 열렸다. 설명은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맡았고, 50여명의 시민이 동행했다.
겸재 정선이 서울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은 약 100여점. '인왕제색도' 등 인왕산 일대를 그린 '장동팔경첩'과 한강을 배경으로 그린 '경교명승첩'을 비롯, 양천향교·무악산 등 서울 곳곳의 절경(絶景)이 겸재의 화폭에 담겼다.
답사는 강서구 가양동 겸재정선기념관에서 출발해 양천향교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궁산 소악루를 거쳐 종로구 배화여자대학, 경복고 등 인왕산 일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석우 겸재정선기념관장은 "겸재가 진경산수화의 기초를 닦았던 한강과 인왕산을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며 "겸재가 당시 경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체험하고, 당시 경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답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겸재정선기념관 주최로 '진경산수화의 완성자'인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작품 속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가 열렸다. 설명은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맡았고, 50여명의 시민이 동행했다.
겸재 정선이 서울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은 약 100여점. '인왕제색도' 등 인왕산 일대를 그린 '장동팔경첩'과 한강을 배경으로 그린 '경교명승첩'을 비롯, 양천향교·무악산 등 서울 곳곳의 절경(絶景)이 겸재의 화폭에 담겼다.
답사는 강서구 가양동 겸재정선기념관에서 출발해 양천향교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궁산 소악루를 거쳐 종로구 배화여자대학, 경복고 등 인왕산 일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석우 겸재정선기념관장은 "겸재가 진경산수화의 기초를 닦았던 한강과 인왕산을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며 "겸재가 당시 경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체험하고, 당시 경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답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림 속 경관 원형 사라져
첫 코스는 겸재 정선이 65세인 1740년(영조 16년)에 현령으로 부임해 5년간 근무한 양천현아터다. 양천현아는 정선기념관 인근에 있었으나 현재는 비석만 남아있다. 겸재의 '양천현아' 그림에 등장한 객사(客舍)와 현청(縣廳)은 아파트와 주택, 절로 바뀌었고 현재는 '양천현아지(陽川縣衙址)'라고 새겨진 비석만 외롭게 놓여 있다. 이석우 관장은 "6·25 때까지 현아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언제 없어졌는지는 모른다"며 "겸재 선생이 근무하며 뒤에 있는 궁산에 자주 올라 내려다 보이는 한강을 즐겨 그렸다"고 말했다.
현아 터 뒷산인 궁산에 있는 소악루라는 정자에 오르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겸재는 이곳에 올라 한강변을 화폭에 담아 '경교명승첩'을 완성했다. 이태호 교수는 "평생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고 65세에 현령으로 부임한 정선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악루에 자주 올랐던 것 같다"며 "이곳에서 한강변을 그리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변 모습과 현재 모습은 사뭇 다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목멱조돈'에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해가 떠오르는 남산이 위풍당당하게 표현돼 있지만 실제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남산은 난지도와 가양대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소악후월'에서도 소나무와 잡목에 파묻힌 소악루를 비롯해 멀리 남산과 선유도 등이 크게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멀리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이 교수는 "과거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던 난지도가 높아져 남산이 가려졌다"며 "도시 개발로 인해 겸재가 봤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마음속 이상향 표현
이 교수는 겸재의 화풍을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문구로 표현했다. 사실 그대로의 '실경(實景)'이 아니라, 풍경을 보고 마음으로 느낀 '진경(眞景)'을 화폭에 수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겸재의 화풍은 입에서 비단이 나오는 것처럼 거짓말을 잘한다는 뜻의 '구라풍(口羅風)'"이라며 "지금 보이는 풍경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끌어와 화폭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겸재의 그림 '행호관어'는 양천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서북쪽 행주산성을 바라본 풍경이다. 그림 속에서는 행주산성 뒤로 멀리 북한산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풍경에서는 행주산성 뒤에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겸재가 풍경을 더욱 운치 있고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실제로는 우측에 한참 떨어져 있는 북한산을 앞으로 끌어와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 교수는 "겸재가 살았던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강을 이상향으로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며 "한강 풍경을 실제보다는 성리학적으로 재해석해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개조해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첫 코스는 겸재 정선이 65세인 1740년(영조 16년)에 현령으로 부임해 5년간 근무한 양천현아터다. 양천현아는 정선기념관 인근에 있었으나 현재는 비석만 남아있다. 겸재의 '양천현아' 그림에 등장한 객사(客舍)와 현청(縣廳)은 아파트와 주택, 절로 바뀌었고 현재는 '양천현아지(陽川縣衙址)'라고 새겨진 비석만 외롭게 놓여 있다. 이석우 관장은 "6·25 때까지 현아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언제 없어졌는지는 모른다"며 "겸재 선생이 근무하며 뒤에 있는 궁산에 자주 올라 내려다 보이는 한강을 즐겨 그렸다"고 말했다.
현아 터 뒷산인 궁산에 있는 소악루라는 정자에 오르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겸재는 이곳에 올라 한강변을 화폭에 담아 '경교명승첩'을 완성했다. 이태호 교수는 "평생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고 65세에 현령으로 부임한 정선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악루에 자주 올랐던 것 같다"며 "이곳에서 한강변을 그리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변 모습과 현재 모습은 사뭇 다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목멱조돈'에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해가 떠오르는 남산이 위풍당당하게 표현돼 있지만 실제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남산은 난지도와 가양대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소악후월'에서도 소나무와 잡목에 파묻힌 소악루를 비롯해 멀리 남산과 선유도 등이 크게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멀리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이 교수는 "과거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던 난지도가 높아져 남산이 가려졌다"며 "도시 개발로 인해 겸재가 봤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마음속 이상향 표현
이 교수는 겸재의 화풍을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문구로 표현했다. 사실 그대로의 '실경(實景)'이 아니라, 풍경을 보고 마음으로 느낀 '진경(眞景)'을 화폭에 수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겸재의 화풍은 입에서 비단이 나오는 것처럼 거짓말을 잘한다는 뜻의 '구라풍(口羅風)'"이라며 "지금 보이는 풍경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끌어와 화폭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겸재의 그림 '행호관어'는 양천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서북쪽 행주산성을 바라본 풍경이다. 그림 속에서는 행주산성 뒤로 멀리 북한산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풍경에서는 행주산성 뒤에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겸재가 풍경을 더욱 운치 있고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실제로는 우측에 한참 떨어져 있는 북한산을 앞으로 끌어와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 교수는 "겸재가 살았던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강을 이상향으로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며 "한강 풍경을 실제보다는 성리학적으로 재해석해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개조해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왕산보다 인왕제색도가 더 멋있어"
겸재의 그림 속 장쾌하게 솟은 나무들과 맑게 흐르는 인왕산 일대 계곡도 현재 수많은 주택으로 채워져 원형을 찾기 어렵다. 필운동 북쪽 끝 인왕산 기슭에 있는 필운대는 현재 배화중·고등학교 건물 뒤편에 남아 있는데 필운대를 배경으로 높이 솟은 나무들과 돌들의 모습은 학교 건물에 가려져 운치를 잃었다. 겸재가 자주 그렸던 자신의 집과 인왕산·북악산 기슭의 모습도 사라졌다. 겸재가 실제로 살았던 집터는 현재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내에 비석으로만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 모델인 인왕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자대학교 옥상에 올랐다. '인왕제색도'는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고 나서 북악산 줄기의 등성이에서 바라본 인왕산을 그린 것으로 뿌연 안개와 장쾌한 봉우리가 그려진 걸작이다. 이 교수는 "인왕제색도는 그나마 사실적으로 표현됐지만 인왕산 봉우리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강조됐다"며 "비에 젖은 암석 봉우리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답사에 참여했던 서은경(40·만화가)씨는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과 실제 풍경을 비교하며 '작가가 이를 어떻게 느꼈나'를 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고 홍금실(61·주부)씨는 "실제 인왕산보다 겸재가 느끼고 강조한 그림 속 인왕산이 더 멋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답사를 진행한 이 교수는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가면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이 걸었던 길, 다녔던 교회 등의 흔적이 보존돼 관광상품화돼 있다"며 "우리도 겸재 정선이 그렸던 서울 곳곳의 풍경을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겸재 정선의 작품과 작품 속 현재 풍경을 더 보고 싶다면 강서구 가양동 겸재정선기념관을 찾으면 된다. 또 다음 달 말까지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겸재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박연폭포'가 전시된다.
겸재의 그림 속 장쾌하게 솟은 나무들과 맑게 흐르는 인왕산 일대 계곡도 현재 수많은 주택으로 채워져 원형을 찾기 어렵다. 필운동 북쪽 끝 인왕산 기슭에 있는 필운대는 현재 배화중·고등학교 건물 뒤편에 남아 있는데 필운대를 배경으로 높이 솟은 나무들과 돌들의 모습은 학교 건물에 가려져 운치를 잃었다. 겸재가 자주 그렸던 자신의 집과 인왕산·북악산 기슭의 모습도 사라졌다. 겸재가 실제로 살았던 집터는 현재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내에 비석으로만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 모델인 인왕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자대학교 옥상에 올랐다. '인왕제색도'는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고 나서 북악산 줄기의 등성이에서 바라본 인왕산을 그린 것으로 뿌연 안개와 장쾌한 봉우리가 그려진 걸작이다. 이 교수는 "인왕제색도는 그나마 사실적으로 표현됐지만 인왕산 봉우리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강조됐다"며 "비에 젖은 암석 봉우리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답사에 참여했던 서은경(40·만화가)씨는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과 실제 풍경을 비교하며 '작가가 이를 어떻게 느꼈나'를 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고 홍금실(61·주부)씨는 "실제 인왕산보다 겸재가 느끼고 강조한 그림 속 인왕산이 더 멋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답사를 진행한 이 교수는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가면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이 걸었던 길, 다녔던 교회 등의 흔적이 보존돼 관광상품화돼 있다"며 "우리도 겸재 정선이 그렸던 서울 곳곳의 풍경을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겸재 정선의 작품과 작품 속 현재 풍경을 더 보고 싶다면 강서구 가양동 겸재정선기념관을 찾으면 된다. 또 다음 달 말까지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겸재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박연폭포'가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