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베토벤 시대처럼 '운명' 연주한 지휘자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9.02 03:05

단원 35명, 청중 50명… 당대에도 웅장했을까?

고음악 전문 지휘자인 요스 판 이메르셀
"빰빰빰빠. 빰빰빰빠~"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는 1악장의 유명한 첫 주제 때문에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는 '운명'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교향곡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지요.

벨기에 출신의 고(古)음악 전문 지휘자인 요스 판 이메르셀(Jos Van Immerseel)이 베토벤의 '운명'에 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운명과 맞서 싸우는 고독한 악성(樂聖)'의 이미지 때문에 이 곡을 연주할 때는 흔히 과도한 낭만주의로 치닫거나 지나치게 영웅적 풍모만을 강조하기 쉽지요. 하지만 지난해 9월 벨기에 브뤼셀의 콘서트 노블(Concert Noble)에서 열렸던 음악회에서 이메르셀은 악기와 편성에서 청중의 규모까지 작곡가 당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개량을 거친 현대식 악기 대신 베토벤 당대의 옛 악기를 사용하고, 현대식 오케스트라의 절반에 불과한 35명 안팎으로 연주했으며, 당대 귀족의 궁정처럼 청중도 50명만 초대했습니다. 최근 출시된 이 공연 영상물의 제목은 '베토벤 5번의 재발견(Beethoven's Fifth. A Rediscovery)'입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이메르셀은 작곡가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집과 작품 초연 장소를 일일이 거닐어봅니다. 베토벤 당대의 향취를 느껴보기 위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작곡가 시절의 오케스트라 규모와 소리의 크기를 꼼꼼하게 가늠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다른 고음악 전문 단체와 마찬가지로 이 악단도 처음엔 현악 연주자 5명과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연주자라는 단출한 실내악단 규모로 출발했지요. 따라서 지휘자와 악단의 관계 역시 대형 오케스트라보다는 훨씬 민주적이고 평등합니다. 이메르셀은 "나는 군대를 이끄는 장군처럼 연주하지는 않는다"고 위트 있게 표현하지요. 바로크 시기의 작품에서 출발한 이들은 어느새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파를 거쳐 베를리오즈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까지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습니다.

사실 산업화와 정보화의 시대에 과거의 완벽한 '재현(再現)'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재연(再演)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낫겠지요. 하지만 작곡가 당대의 악기와 연주 방법을 통해 이들은 작품의 본뜻을 차분하게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