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익혀온 제 브람스 협주곡 들어보실래요?"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0.09.02 03:05

17일 런던 필 내한공연 협연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열살때 연습 끝내… 음반은 작년에… 이번 지휘자와는 예전에도 협연
늘 음악에 파묻혀 산다? 공부 아니면 클래식 잘 안들어

무대에서 두리번거리던 소녀는 연주가 시작되자 현란한 손놀림과 신들린 듯한 기교로 무장한 비르투오소(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로 변신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5년 주빈 메타 지휘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진 '유러피안 콘서트' 실황 DVD는 열다섯 살 사라 장(장영주)이 파가니니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현(絃) 위를 춤추듯 경쾌하게 움직이는 사라 장의 손가락을 클로즈업했다. 주빈 메타가 '하늘이 보내준 천사'라고 칭찬한 '신동(神童)'의 연주다웠다. 만 네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라 장은 아홉 살인 1990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 이미 파가니니를 협연했다.


 

베토벤과 바흐는 사라 장이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목표다. 사라 장은“바흐는 화장기 없는 아름다운 여인 같다”고 했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오는 17일 내한 공연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을 협연하는 사라 장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지난달 31일 밤 미국 필라델피아의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도 "LA 필하모닉과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연주하고 막 돌아왔다"면서 "다섯 시간 뒤엔 다시 켄터키로 날아가 루이스빌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 협주곡을 협연한다"고 했다.

사라 장은 뉴욕 필, 베를린 필, 빈 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했고 샤를르 뒤투아, 마리스 얀손스, 사이먼 래틀, 로린 마젤, 발레리 게르기예프, 제임스 레바인 등 마에스트로(거장 지휘자)와 호흡을 맞췄다. 사라 장은 "대부분의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협연해봤기 때문에 어느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호흡이 맞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음악적으로 최선의 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만 고민하면 된다"고 했다.

늘 음악에 파묻혀 살 것 같은 사라 장은 뜻밖에 '공부(작품 분석)할 때' 외엔 바이올린은 물론 클래식 음반을 잘 듣지 않는다고 했다. "레스토랑 지배인이 가끔 알아보고 제 연주 CD를 틀어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전 밥을 못 먹어요. 온 신경이 음악에 쏠리니까요." 차를 몰 때도 클래식을 듣다 보면 연주를 이모저모 따져보느라 위험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라 장은 작년 11월 EMI에서 브람스와 브루흐 협주곡 음반을 냈다. 브람스 협주곡은 열 살 무렵 연습을 끝내고, 뉴욕필 지휘자였던 쿠르트 마주어에게 "언제 연주할 수 있겠느냐"고 귀찮을 만큼 물었으나 "좀 더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리라"는 얘기만 들었다. 스물서너 살쯤 연락해온 쿠르트 마주어는 "줄리아드음악학교에서 공부한 악보는 버리고, 아무 메모도 없는 새 악보를 들고 오라"고 했다. 사라 장은 20년 가까이 익혀온 브람스 협주곡을 이번 내한공연에서 들려준다. 런던 필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16일), 드보르작 교향곡 8번(17일)을 연주한다. 런던 필 내한 공연을 지휘하는 바실리 시나이스키와는 몇년 전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으로 여러 도시를 돌며 호흡을 맞췄다.

사라 장은 매년 생일은 물론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도 연주장이나 연주장으로 오가는 길에 맞았다고 했다. 연주가 끝난 뒤 케이크는 잘랐지만 아무래도 섭섭했던 모양이다. 오는 12월 서른 번째 생일을 맞는 사라 장은 "이번에는 무조건 놀기로 했어요. 친구들과 여행 가기로 벌써 계획을 짰어요"라고 했다.

▶런던 필하모닉 내한 공연 16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리처드 용재 오닐·스테판 재키브 협연), 17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사라 장 협연) (02)318-43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