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31 17:47
하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조명. 10살 소년 빌리(이지명)가 춤을 춘다.
한들한들 봄바람처럼 빌리의 몸은 무대를 휘젓고,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공간은 무대 위 소년으로 집약되고, 시간은 잠시 숨을 멈춘다.
꼬마 발레리노 빌리가 여전히 꽁꽁 얼어있는 한국 뮤지컬시장을 녹일 수 있을까?
지난 13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돛을 올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뮤지컬계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2,3년째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뮤지컬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바람을 갖기에 충분하다. 세계적인 히트작의 라이선스 초연인데다 올해 유난히 대작, 화제작이 없어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2000년)를 원작으로 2005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다. 달드리 감독이 다시 연출을, '팝뮤지컬'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는 엘튼 존이 음악을 맡았다. 1980년 대처 수상 시절, 폐광위기에 처한 영국 북부 탄광촌을 무대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소년 빌리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무대 역시 원작의 감동을 부족함없이 보여준다. 정치사회적인 현실과 꿈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가고, 노래와 안무, 소품들을 활용한 빠른 무대 전환이 3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 피터 달링의 안무는 클래식과 모던, 발레와 탭과 모던댄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아름답고 따스하고 코믹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특히 명장면으로 꼽히는 '일렉트리시티'와 빌리가 미래의 빌리와 함께 추는 2막 초반의 2인무 '드림발레'는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동성애 코드를 보여주는 빌리의 친구 마이클, 소녀 발레무용수들의 코믹연기도 감초로 손색없다.
스토리 자체가 국내 정서에 잘 부합된다. 장기파업 중인 탄광촌, 한창 파업 중인 아빠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가며 아들의 미래를 위해 투쟁에서 빠진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온 우리 부모들과 닮았다.
이 작품엔 빅스타들이 없다. 대신 빌리가 있다. 발레와 탭댄스는 기본이고 노래 실력까지 갖춰야한다. 연기력은 당연지사. 제작사인 매지스텔라의 문미호 대표가 런던에서 오리지널 제작사인 워킹타이틀과 첫 접촉했을 때 들은 말도 "한국에 발레하는 소년들이 많나요?"였다.
지난해 2월 시작한 '빌리를 찾아라!'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4명(김세용 이지명 임선우 정진호)이 빌리를 번갈아 연기한다. 매지스텔라 측은 "4명이 각기 특색있는 빌리를 보여준다"며 "각각 잘 하는 분야를 살려 안무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주요 인터넷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제작사측은 "서서히 티켓 판매에 불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작품을 본 관객들의 입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해맑은 열살짜리 소년이 지금 국내 뮤지컬시장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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