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25 23:25
[클래식 ABC] 활이면 활, 건반이면 건반…
가곡 반주를 즐겨 맡았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Britten)이나 아내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소프라노)의 피아노 반주를 자청했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처럼 만능(萬能) 재주꾼이 음악계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27세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Fischer)같이 한 무대에서 다재다능(多才多能)을 동시에 과시한다면 사정은 또 달라집니다.

2008년 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 청소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마티아스 핀처)의 신년음악회에 피셔가 협연자로 초대받았습니다. 1부에서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정상적'으로 협연했지요. 하지만 2부에서 무대에 돌아온 피셔는 활을 잡는 대신,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동시에 선보인 그의 재주에 음악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실황은 다음 달 영상으로도 출시되지요.
피셔의 도전이 의미 있는 건, 두 악기를 선보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10개의 손가락이 건반과 맞닿는 피아노가 기본적으로 화성(和聲)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면, 하나의 활을 잡는 바이올린은 선율을 읊조리는 데 잘 어울립니다. 피셔는 "다성(多聲) 음악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훨씬 까다롭다. 하지만 선율의 흐름을 표현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더 쉽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라는 이중성을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음악을 다양한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셔는 네 살 적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우며 자랐습니다. 네 살 연상의 오빠가 피아노 연습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반 앞에 앉았다고 하지요.
피셔는 12세 때인 1995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부터 '음악 영재'들의 성공 궤적을 그대로 밟아갔습니다. 20세 때는 로린 마젤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같은 해 카네기 홀에도 데뷔했지요. 음반사 펜타톤과 전속계약을 맺고서 바흐의 무반주 독주곡이나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평단의 상찬을 받은 뒤 2008년 대형 음반사인 데카로 이적한 것까지도 선배 영재들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조숙(早熟)이 만성(晩成)을 보장하지 않듯이, 너무 이른 성공에는 언제나 우려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스스로 지쳐서 떨어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지요. 피셔의 양수겸장(兩手兼將)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보입니다.
피셔의 도전이 의미 있는 건, 두 악기를 선보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10개의 손가락이 건반과 맞닿는 피아노가 기본적으로 화성(和聲)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면, 하나의 활을 잡는 바이올린은 선율을 읊조리는 데 잘 어울립니다. 피셔는 "다성(多聲) 음악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훨씬 까다롭다. 하지만 선율의 흐름을 표현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더 쉽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라는 이중성을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음악을 다양한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셔는 네 살 적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우며 자랐습니다. 네 살 연상의 오빠가 피아노 연습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반 앞에 앉았다고 하지요.
피셔는 12세 때인 1995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부터 '음악 영재'들의 성공 궤적을 그대로 밟아갔습니다. 20세 때는 로린 마젤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같은 해 카네기 홀에도 데뷔했지요. 음반사 펜타톤과 전속계약을 맺고서 바흐의 무반주 독주곡이나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평단의 상찬을 받은 뒤 2008년 대형 음반사인 데카로 이적한 것까지도 선배 영재들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조숙(早熟)이 만성(晩成)을 보장하지 않듯이, 너무 이른 성공에는 언제나 우려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스스로 지쳐서 떨어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지요. 피셔의 양수겸장(兩手兼將)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