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19 03:04
플루트 천재 쇼코토바양, 韓·실크로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뽑혀
자기 악기 없이 꿈 키워…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돼 독주회 하러 다시 올게요"
"작아지다가 커지지 말고 포르테(forte·세게)로 계속 가자." 지휘자 이원숙(42)씨의 말에 류보프 쇼코토바(Shchekotova·18)양이 유독 큰 눈을 깜빡이며 집중했다. 그는 러시아 카잔 지역에서 '플루트 천재'로 통한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둘이 살다가 5년 전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잃었다. 이후 '이젠 음악만이 나의 전부'라는 각오로 플루트를 불었다고 한다. 다음 달 모스크바 명문 음악대학인 마이머니드 국립클래식음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
"늘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해외 콩쿠르 출전은 상상도 못했어요." 쇼코토바양에게는 이날의 한국 공연이 첫 해외 무대다. 공연을 앞둔 그는 "긴장이 돼 손에 땀이 다 나지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쇼코토바양의 한국 공연은 카잔 국립예술학교 선생님인 자하로브 블라드레노비치씨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9월 한국의 실크로드재단은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 신체적 장애나 불우한 환경 때문에 묻혀버릴 우려가 큰 실크로드 국가 청소년들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모집한다'고 국제 공고를 냈다. 이것을 본 선생님이 쇼코토바양을 추천했다. 쇼코토바양은 1·2차 오디션에 합격했고, 지난 5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 11일 서울 관광에 나선 쇼코토바양은 중고 악기상이 많은 종로 낙원상가에 갔다가 중고 플루트를 전시한 한 매장 앞에 못이 박힌 듯 한참을 서있었다. 그는 "러시아에선 전공 음대생들이 쓰는 플루트가 한국 돈 1000만원쯤 하는데, 한국에선 반값인 500만원에 팔아 놀랐다"고 했다. 갖고 싶은 생각에 매장 앞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10살 때 플루트 연주에 감동해 학교 음악교사를 졸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지금껏 자기 악기 없이 학교나 선생님 것을 빌려 사용해왔다. 이번에 명문 음대에 합격했지만 '자기 악기가 없으면 합격을 취소한다'는 대학 방침 때문에 입학하지 못할 위기에 놓인 상태다.
하염없이 플루트를 바라보던 그는 매장 주인에게 서툰 한국어로 "나, 이거 사고 싶어요. 팔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은 무표정하게 '노(No)'라고 했고, 쇼코토바양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더니 "메드베데프 대통령한테 편지라도 보내볼까요?"라며 농담도 했다.
"세계적 플루티스트가 돼서 각국을 다니며 저같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게 꿈이에요. 10년쯤 후엔 한국에 다시 와서 '쇼코토바' 이름으로 독주회를 열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