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03 23:25
넓은 소매와 곧은 깃, 세련되고 은은한 녹색의 색감…. 1740년대 조선 영조가 입었던 도포(중요민속자료 220호)가 처음으로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대구박물관(관장 이내옥)은 1979년 대구 파계사(把溪寺) 관세음보살의 복장(腹藏)유물로 발견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영조의 도포를 박물관 내 새롭게 신설된 섬유복식실에서 8월 15일까지 공개 전시하고 있다.
영조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圓通殿)의 관세음보살을 개금(改金)하다가 발견됐다. 도포와 함께 한지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이 발견돼 이 도포가 파계사에 보관된 경위가 밝혀졌다. 발원문은 "1740년에 파계사 대법당을 수리하고 영조가 1000개의 불상이 그려진 탱화를 희사하면서 이곳을 왕실을 위해 기도하는 도량으로 삼고 영조가 입던 도포를 복장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발원문 기록에 의해 영조의 도포임을 알게됐다.
신라 애장왕(804년) 때 창건된 파계사는 영조와 전생의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이라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왔다. 그러다 1979년 도포와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영조의 원찰(願刹)이라는 구전이 입증됐다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박물관은 "조선시대 왕의 업무복인 곤룡포는 남아 있지만 왕의 일상복인 도포는 이것이 유일하다"며 "형태와 색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복식사적 가치가 큰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흥선대원군 기린흉배(중요민속자료 65호)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국보 282호) 등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053)768-6052
신라 애장왕(804년) 때 창건된 파계사는 영조와 전생의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이라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왔다. 그러다 1979년 도포와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영조의 원찰(願刹)이라는 구전이 입증됐다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박물관은 "조선시대 왕의 업무복인 곤룡포는 남아 있지만 왕의 일상복인 도포는 이것이 유일하다"며 "형태와 색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복식사적 가치가 큰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흥선대원군 기린흉배(중요민속자료 65호)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국보 282호) 등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053)768-6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