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구 최후의 男女 "멸종이냐 번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7.22 03:05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연극 '인간'

무대엔 남자(이화룡)와 여자(김채린) 둘뿐이다. 영문도 모른 채 한 공간에 갇힌 이들은 보자마자 으르렁댄다. 남자는 화장품 회사의 연구원, 여자는 호랑이 조련사다. 영역 다툼이 시작되고 여자는 남자를 동물 다루듯 한다. 싸우던 남자가 객석을 쏘아보며 말한다. "당신들이 관찰하고 있는 거 알아요.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맞죠?"

연극‘인간’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남자(이화룡)와 여자(김채린). /투비컴퍼니 제공
연극 '인간'(연출 김동연)은 동물학 지식을 활용한 게임 같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핵전쟁 끝에 지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남녀를 그리며 물음을 던진다. 인류를 멸종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인가? 격하게 싸울 땐 전기충격이 오고, 접촉하면 음식이 나오고, 어느 순간엔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남녀를 사랑의 행위로 유도하는 장치들이다.

이 연극은 암전(暗轉)이 잦은 게 단점이지만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에서 규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혼 여성이 지닌 결혼에 대한 환상, TV 리모컨과 가정의 권력, 이혼, 종교 등을 소재로 쓴다. 남녀는 급기야 인류에 대한 재판을 벌인다. 무죄면 섹스를 해 종족을 보존하고, 유죄면 따로 살다 죽기로 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라는 검사의 주장과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는 변호인의 주장이 충돌한다.

'인간'은 원작 희곡을 충실히 무대로 옮겼다. 빈 무대를 연극성만으로 채우려면 배우의 호흡과 집중력이 더 올라와야 한다. 이화룡은 화술과 다역(多役) 연기가 안정적이었고, 관계가 역전되는 후반부의 밀도가 좋았다. 즉물적으로 차갑고 외계의 느낌이 나는 세트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화룡·전병욱이 남자, 김채린·손희승이 여자 역을 나눠 맡는다. 8월 29일까지 충무아트홀. (02)747-2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