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7.15 16:16
배우 오달수
배우 오달수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지난해에 출연한 연극 '먼데이 5PM' 이후 8개월 만이니 오래된 일은 아닌데도 자주 무대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일까, 그의 출연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7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호암아트홀에서 공연하는 연희단거리패의 '오구'. 그의 연극 첫 데뷔작이기에 10년 만에 다시 출연하는 그에게는 각별한 작업이다.
“이번 공연은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았어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스케줄이 안 맞아서 안 되겠다 했다가 촬영 일정이 늦춰지는 바람에 바로 다시 연락을 했죠. 어머니 역할을 맡은 강부자 선생님과는 2000년 정동극장 공연에서 한 무대에 섰었죠. 그때 맡은 역할도 맏상제였는데 이번에도 맏상제 역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같은 역할이라도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세월의 무게라는 게 있으니까.”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문학이나 연극과는 상관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무렵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인쇄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에서 온 첫 번째 기회였을까. 그 일로 한창 활동 중이던 연희단거리패와 인연을 맺는다.
“그 인쇄소가 가마골 소극장과 거래를 했었는데 인쇄물 배달하는 것이 내 일이었어요. 한마디로 ‘시다바리’. 그때가 1989년 즈음이니까 이윤택 선생님이 시인으로도 극작가로도 한창 활동이 왕성한 때였는데, 가마골 소극장에 인쇄물 배달도 자주 갔었어요. 가서 기웃거리다가 밥 얻어먹고, 밥 얻어먹었으니 잡일 좀 도와주고 그랬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음은 딴 데 있었는지 극장 앞을 오가다가 마주치면 너무 반갑고…. 공연도 보러 오라고 하고 술도 사주고 정말 인간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연극한다고 들어와 그들과 함께 있더라고요.”
1989년 6월, 동숭아트센터 개관 프로그램으로 연희단거리패는 '시민 K'를 공연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공연이었는데 그 공연으로 부산에 있던 극단 식구들이 서울 창동에 있는 시인 장석주 집에서 합숙을 하게 되었다. 배우들이 다 지쳐서 자고 있는 어느 날 새벽, 연출가 이윤택은 거실에서 타자기를 치기 시작했다. 배우들이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 작품 하나 썼다고 내밀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오구'다.
“연극하면서 처음 무대에 선 역할이 '오구'의 ‘문상객 1’이에요. 대사 없기는 문상객 2, 3이나 마찬가진데, 연기가 뭔지도 몰라서 하라는 대로 무대에 가만히 서 있었죠. 연희단거리패는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한 사람이 단체 안에서 이 일 저 일 하니까 그냥 그런 게 재미있기도 했고.”
1997년 조광화가 쓰고 연출한 '남자충동'에 출연하면서 상경해 대학로 배우로 자리를 잡아간다. 경상도 억양과 부정확한 발성이 그에게 늘 걸림돌이 되었지만, 그것은 역으로 그만이 가지는 독특한 말투가 되었다. 오히려 그의 굽은 등에서 보이는 삶의 쓸쓸함, 생의 이면을 응시하는 매서운 눈매는 그를 무대에서 살아 있는 배우로 각인시켰다.
“사실 연극하면서 어머니께 계속 용돈을 받아서 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연극하는 것에 특별한 반대는 없었지만, 형제 중 막내라 어머니가 보시기에 난 늘 아이 같았겠죠. 생활이 어려워도 연극은 재밌더라고요. 무엇보다 연극은 날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연극을 발판으로 영화 출연을 하는 그런 보상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연극을 하지는 않았죠. 더 아름다운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막연하지만 저에겐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연극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들다고 한다. 공연 연습에 들어가면 매일 출퇴근하듯 지하 연습실로 가서 여덟 시간에 걸친 연습을 끝내고 어두워질 무렵에야 지상으로 올라오면 선후배들과 술 한잔에 고민을 나누는 게 배우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 시기도 지나 어느 정도 관성이 붙으면, 그냥 한다. 그 수밖에는 없다. 돈을 벌겠다거나 안정된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이면 연극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연극을 하겠다고 선택한 이상 ‘그냥’ 하는 것이다. 오달수는 ‘그냥’이라는 말에는 대단한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냥’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라면서.
그저 그 길을 걸었을 뿐
“김광보 연출의 '인류 최초의 키스'를 공연할 때 영화 '해적, 디스코 왕 되다' 제작진에서 출연 제안이 들어왔어요. 만나자고 해서 갔는데 제작자가 3일 촬영 분량이라고 하면서 개런티 얘길 해요. 물론 연극 출연해서 받는 액수보다는 훨씬 많았지만 보편적으로 이해할 만한 개런티는 아니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못하겠다고 하고 벌떡 일어났어요. 그 돈이라도 어디야, 아쉽긴 했지만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서 OK를 하면 내 후배들에게 이것이 기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다행인지 당연한 것인지 제작자가 날 붙잡더라고요. 개런티 협상을 다시 했고 그 작품이 영화 데뷔작이 되었죠.”
우스갯소리지만, 한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국 영화를 오달수가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누어 분류했었다. '올드보이'를 필두로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친절한 금자씨' 등에서 내로라할 만한 감독들과 작업을 하고, '음란서생' '방자전'에서 만난 김대우 감독은 배우 오달수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조연이지만 주연 부럽지 않은 유명세다. 이름만큼이나 친근한 얼굴, 표정 없는 얼굴에 무심한 말투, 악역인데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오달수란 배우를 확실히 알렸다.
“그 배우의 캐릭터가 계속 재생산될 경우, 관객들은 그만해줬으면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관객들은 그 이미지를 즐겨요. 한데 정작 못 견뎌하는 건 배우 자신이죠. 늘 비슷한 캐릭터만 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지게 되니까. 자꾸 그 안에서 새로움을 찾고, 뭐라도 다르게 하고 싶고. 저도 좀 다른 역할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은 늘 있죠. 근데 내 얼굴 가지고 멜로가 되겠어요. 아무래도 제약이 있겠지.”
연극과 영화 두 장르에서 오달수 스타일을 만들어낸 그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이제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에 낯설고 어색한 웃음을 보인다. 애초에 성공을 위해 들어선 길이 아니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 여전히 좋으니 계속할 것이다. 때론 배우들이 유명세를 등에 업고 연극 무대에 더블 혹은 트리플로 출연을 하지만, 그는 전 회 출연을 고집한다. 무대에 설 때는 무대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 일 년에 한 편씩은 꼭 연극을 하려고 합니다. 출연작을 고르는 기준은, 일단은 스케줄이 맞아야 하고(이게 제일 어렵지만) 내 역할이 무엇인지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작품이 어떤지가 더 중요해요. 하지만 이 모든 기준을 제치고 언제나 극단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죠.”
극단 신기루만화경의 대표로 있으니 그 책임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여름 '오구'를 마치고 나면, 설경구와 출연한 영화 '해결사'가 9월 개봉을 앞두고 있고, 10월에는 신하균・엄지원과 함께 출연한 영화 '페스티발'이 개봉 예정이다. 연극보다는 영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여전히 연극연출가들은 오달수라는 배우를 찾고, 오달수가 출연하면 적역일 작품도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은 그의 모습을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연극은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이 바닥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떠날 수도 없어요. 연극이 좋은데 어쩌겠어요. 한편으론 영화에 출연하다 보니 배우에게 대중적 인지도도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도 관객에게 외면받는 공연은 의미가 없으니까. 연극이 좀 더 관객을 위해 고민해야죠. 순수예술이라는 강박을 버리고, 너무 실험적이거나 너무 상업적으로 몰고 가진 않았으면 하고요. 관객에게 이 시대에 연극이 소중한 발언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싶습니다.”
배우에게 ‘천생 배우’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행복한 칭찬이 있을까. 배우 오달수는 천생 배우다. 말할 때도 웃을 때도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울 때도 그에게는 배우가 갖는 동물적 감각이 느껴진다.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포스터를 실어 나르던 스무 살 청년이 이제는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조연의 존재감을 한 단계 올려놓은 배우가 되었다. 아직 배우 오달수에게는 걸어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하루하루 배우로서 밟는 그 길이 훗날 후배들에게 삶의 지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극 '오구'
일시 : 7월 30일~9월 5일
장소 : 호암아트홀
문의 : 02-501-7888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