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한의 예술의 잔당들] 뮤지컬 '코러스라인'

  • 스포츠조선 권영한 기자

입력 : 2010.07.15 15:41

'진짜'브로드웨이 공연 … 한국 관객과의 소통력은 부족

1997년이었다. 방한한 뤽베송 감독이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자신의 영화 '제5원소'가 한국 수입사에 의해 무단 편집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한 것이다.

'제5원소' 사건은 2000년대 이전 한국 뮤지컬계의 관행에 비하면 코흘리개 애들 장난이다.

수많은 브로드웨이 공연들이 무단으로 복제되어 버젓이 무대에 올라갔다. 저작권이나 라이선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뮤지컬 '코러스라인'도 그런 무단 복제품 중 하나였다.

얼마전 정품 '코러스라인'이 한국에 상륙했다. 브로드웨이 정식 라이선스를 획득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막을 올렸다.

'코러스라인'은 무대를 꿈꾸는 배우들의 이야기다. 새 뮤지컬에 캐스팅할 배우를 뽑는 오디션장. 17명의 후보들이 연출가 잭 앞에 섰다. 잭은 이력서에 적혀 있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글래머 스타일의 발(Val)은 노래나 춤 실력보다 가슴 사이즈가 훨씬 캐스팅에 도움이 된다고 딴소리를 하고, 마이크는 어린 시절 누나의 발레 슈즈를 몰래 신었던 사연을 공개한다.

모든 공연이 마찬가지겠지만 '코러스라인'은 배우가 특히 중요하다. 조명, 의상, 무대 세트는 최소화ㆍ간략화됐다. 배우들의 땀과 열정, 춤과 노래만으로 2시간을 채운다.

'코러스라인'은 결론적으로 '뮤지컬의 현지화(localization)'를 고민하게 한다. 오디션에 목숨 건 배우 17명의 이야기가 가슴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공감이 적다. 미국적 드라마와 유머에 관객들은 웃음과 눈물의 포인트를 놓친다. 한국적 현실에 맞게 손질을 하기도 힘들다.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기본적으로 작품에 손을 댈 수 없는 계약이 많다. 번역이나 윤색 과정에서 약간의 손질은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저작권자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맘마미아'나 '오페라의 유령' 같은 해외 유명 뮤지컬을 한국에 들여올 땐 늘 마찬가지다.'코러스라인'의 국내 제작사는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번역상의 문제를 수정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 한국에서 공연됐던 '코러스라인' 해적판이 쇼적인 측면에만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정식 공연은 원래의 드라마 위주로 돌아왔다"며 "브로드웨이에서 온 연출도 그런 원작의 느낌,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생각과 열정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을 깊게 파느라 한국 관객과의 소통엔 서툴렀다는 느낌이다.

'코러스라인'을 볼 때는 자신이 앉은 자리가 객석이 아닌 연출자의 의자라고 생각하면 몰입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당신이 직접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배우들의 연기에 점수를 매기는 거다. 17명 중 최종 선발은 남자 넷, 여자 넷이다. 당신이라면 누굴 뽑겠는가. 평가는 공정하게. 배우들의 다리 길이와 가슴 사이즈, 잘 다듬어진 복근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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