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7.08 03:07
콘서트 무대 함께 서는 소프라노 홍혜경·테너 김우경
美 '오페라 1번지' 메트로폴리탄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男女 주역으로 공연
"가슴에 불꽃이 타오르는 한 우린 성악가 아닌 예술가죠"
미국의 '오페라 1번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에 지난 2007년 이변이 일어났다. 이 극장 120여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남녀 성악가가 동시에 한 공연의 주역을 맡은 것이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의 막이 오른 뒤 피터 겔브 극장장은 "두 한국 성악가를 함께 주역으로 캐스팅한 건 국적이나 인종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들이 세계 최고 무대에 설 만한 기량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주역이었던 소프라노 홍혜경(50)과 테너 김우경(33)은 3년 만의 만남에서 서로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얼싸안았다.

▲김우경=당시 첫 리허설을 위해 성악가들이 모였는데 홍 선생님께서 안 보이시더라고요. 그런데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차례가 되니 갑자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죠.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셔서 외국인인 줄 알았어요.(웃음)
▲홍혜경=우경씨가 처음 소리를 낼 때의 모습도 아직 생생해. 그렇게 젊고 싱싱하며 아름다운 목소리일 수 없었어. 가슴이 시원시원했어.
▲김=선생님께선 1984년 메트에 데뷔하시고서 줄곧 그 무대를 지켜왔잖아요. 몸이 곧 악기인 성악가들이 롱런(long-run)하기 위해선 자기 관리에 엄격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홍=처음 메트에 왔을 때 동양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어. 그때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 역만 불렀을 거야. 그래서 거꾸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가운데 클레오파트라 같은 역부터 도전했어.

▲김=무거운 음색의 배역을 너무 일찍 맡으면 목이 상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젊고 소리가 나올 때 불러야지, 언제까지 미루기만 할 건지 답답하기도 해요.
▲홍=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 자칫 무리하면 5년이면 제 목소리를 잃어버려.
▲김=하긴 '성악가는 원금이 아니라 이자로 노래한다'는 말도 있어요. 잘못하면 원금마저 까먹는 거죠.
▲홍=성악가는 무대에 설 때 자신을 잊고 그 배역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동양인이 서양 오페라의 주역을 맡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한국 소프라노들이 먼저 지나갔고, 이젠 젊은 한국 테너들의 짐이 무거워.
두 성악가는 2008년 영국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도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가운데 남자 주인공 로돌포와 여주인공 미미를 나란히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연 직전 남편과 사별한 홍혜경이 출연을 취소했고, 그는 2년간의 공백 끝에 올해 다시 내한무대로 돌아온다.
▲홍=지난 2년 반은 내가 성숙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으며, 서러움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는 걸 '인생 수업'처럼 공부한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동안 비록 노래는 할 수 없었지만 삶은 계속되고, 성악가는 결국 무대에 서야 한다고 느꼈어.
▲김=음악 기계처럼 노래 잘하는 가수는 많지만, 정작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성악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홍=우리가 파바로티나 칼라스는 아닐지 몰라. 하지만 맘속에 훨훨 불타는 감정을 간직하고 있을 때, 비로소 성악가들은 예술가가 되는 거야. 가슴속에서 그 불꽃을 꺼뜨리면 안 돼.
▶소프라노 홍혜경 독창회, 8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1577-7766
▶홍혜경·김우경이 함께하는 오페라의 밤, 13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울산 현대예술관,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02)516-3963
☞홍혜경은…
1984년 뉴욕 메트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로 데뷔한 뒤 사반세기 가까이 정상의 무대를 지켰다. 신영옥·조수미와 함께 ‘한국의 3대 소프라노’로 불린다. 2008년 남편과 사별한 뒤 공백을 갖다가 뉴욕 메트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의 요청으로 컴백했다.
☞김우경은…
2003년 독일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한 뒤 이듬해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 입상했다. 2007년 홍혜경과 뉴욕 메트에서 나란히 주역을 맡았고,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정상의 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