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말러는 울부짖지 않았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6.30 23:37

20세기 후반 '말러 부활'의 선구자는 단연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입니다. 모교인 하버드대 강연에서 그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말러(1860~1911)를 '음악적 예언자'에 비유했지요. 번스타인은 "20세기는 잘못 쓰인 드라마와도 같다. 탐욕과 위선으로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겪고서도 여전히 탐욕과 위선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이 참상을 겪고서야 우리는 드디어 말러를 받아들일 채비를 갖췄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번스타인은 말러의 교향곡 전곡(全曲)을 2차례 녹음했고, 그 뒤 말러의 교향곡은 지휘자들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지요.

'말러 부활'을 넘어 '말러 포화'로 치닫던 클래식 음반 시장에 최근 또 다른 지휘자가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영국의 고(古)음악 거장 로저 노링턴(Norrington·사진)이 말러의 교향곡 녹음에 나선 것이지요. 번스타인의 말러가 소리 내어 통곡한다면, 노링턴의 말러는 속으로 울음을 삼킵니다. 같은 곡에서도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두드러지는 건 '비브라토(vibrato)'의 사용 여부 때문입니다. 현(絃)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풍부한 표현을 얻어내는 비브라토는 20세기 들어 습관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노링턴은 이를 식품첨가물처럼 끔찍하게 여기고 배제해버린 것이지요.

신선한 파격이라는 찬사부터 민숭민숭한 일탈이라는 비판까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뚜렷한 주관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노링턴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그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음반 자료를 통해 "비브라토는 할리우드 영화음악과 대중음악이 만개(滿開)한 20세기의 산물이며, 말러 당시의 빈에서는 비브라토를 결코 남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비브라토를 금기로 여기는 바로크 음악의 연주법으로 비브라토 과잉으로 치닫기 쉬운 말러 음악에 접근하는 노링턴의 고집은 홀로 적진 한복판에 쳐들어간 무사(武士)만큼 다부지고 옹골찹니다.

식품첨가제를 쓸 수 없을 때에도 사실 주부가 낼 수 있는 손맛은 다양합니다. 노링턴의 비결은 속도의 급격한 변화를 통한 완급 조절입니다. 마지막 교향곡 9번 1악장에서 우보(牛步)처럼 느릿느릿 여유 있게 걷던 노링턴은 거꾸로 2악장에서는 빠르고 경쾌하게 보폭을 가져갑니다. 다른 고음악 연주자들이 주류 음악계와 타협과 공존을 모색하는 동안에도, 76세의 노장 노링턴은 여전히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의 게으른 고정관념에 도전합니다. 가장 훌륭한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가장 독특한 말러 음반인 것은 확실합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 논쟁에는 박해나 처벌은 없는 대신 다양한 해석과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명 유쾌한 도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