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상나팔 정도가 아니라니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7.01 03:04

[리뷰] 나카리아코프 트럼펫 리사이틀
재즈적 향취… 낭만적 프랑스 곡들… 진지한 콘서트 악기로 本色 드러내

처음부터 쉴 새 없는 밸브(valve)의 잰 놀림이나 멈출 줄 모르는 호흡 같은 초절(超絶)기교로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으리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트럼펫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러시아 출신의 트럼페터(trumpeter)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Nakariakov·33)는 29일 호암아트홀 리사이틀에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약음기(弱音器)를 트럼펫에 끼우고 무대에 나와 누아르(Noir) 영화나 재즈에서 나올 법한 음울하고 나른한 선율로 서서히 운을 뗐다. 러시아 작곡가 블라디미르 토르친스키가 그를 위해 작곡한 '카프리치오'였다.

이어 플뤼겔호른으로 악기를 바꾼 나카리아코프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가운데 이중창을 주제로 베토벤이 편곡한 작품을 들려줬다. 척 맨지오니(Mangione)의 '필 소 굿(Feel so good)'으로 재즈 팬에게도 친숙한 이 악기는, 바로 눈앞에서 불면서도 소리는 멀찍이서 들리는 듯한 아른한 멋을 갖추고 있다. 피아노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플뤼겔호른은 오페라 속의 이중창 같은 도란도란한 재미가 있었다.

29일 내한 리사이틀을 가진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 /호암아트홀 제공
이어서 나카리아코프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통해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으로 친숙한 '정결한 여신'의 선율을 플뤼겔호른으로 연주했다. 그는 기존의 트럼펫 협주곡뿐 아니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까지 편곡해서 연주하는 왕성한 음악적 식욕과 소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1·2부에서 포레의 소품 '꿈꾼 후에'와 풀랑의 '사랑의 길' 등 낭만적 정취가 가득한 프랑스 곡들을 들려주면서 나카리아코프는 이날 독주회의 주제가 '오페라와 낭만'임을 분명히 했다. 군악대와 행진곡의 씩씩한 팡파르와 기상나팔 정도로만 알고 있던 금관 악기가 진지한 콘서트 악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이미 14세 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하며 '트럼펫 신동'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나카리아코프는 이날 화려한 기교에 목마른 팬들을 위해 앙코르 '베니스의 사육제' 변주곡에서 시원한 폭포수처럼 음표들을 쏟아냈고, 객석의 환호도 그만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