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혹적인 여인이 '죽음'이라니…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7.01 03:04

국립발레단 '롤랑 프티의 밤'

무대가 열리면 남자가 차가운 다락방 침대에 누워 있다. 눈빛은 공허하다. 천장에서 침대로 이어진 커튼은 강렬한 핏빛이다. 남자는 시계를 본 뒤 일어선다. 그의 춤은 뚝뚝 끊어지면서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의자와 탁자까지 이용해 춤을 추는데 문이 열리고 고혹적인 노란 드레스의 여인이 등장한다. '죽음'이다.

프랑스 안무가 롤랑 프티(86)의 모던발레 '젊은이와 죽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장 콕토가 대본을 쓰고 바흐의 음악 '파사칼리아'를 붙인 1946년 초연작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연출가 피터 브룩은 '젊은이와 죽음'을 보고 "프티의 안무는 사실주의와 유희를 벌이며 부조리(不條理)하게 비틀거린다. 하지만 춤을 파괴하는 일상의 동작이 아니라 진정한 춤의 계열에 속하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젊은이와 죽음’에서 윤혜진(왼쪽)과 이원철.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이 '젊은이와 죽음'(20분)을 비롯해 '카르멘'(45분) '아를르의 여인'(35분) 등 프티의 세 안무작을 모아 '롤랑 프티의 밤'을 공연한다. 롤랑 프티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상디자인), 파블로 피카소(무대디자인), 장 아누이(대본) 등과 작업한 거장이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젊은이와 죽음'은 바리시니코프가 출연한 영화 '백야'의 한 장면으로도 기억된다.

이 작품에서 '죽음' 역을 맡는 발레리나 윤혜진은 "춤은 있는데 음악은 사라지는 대목이 있어 괴롭다"고 했다. 남녀 무용수의 호흡으로 그 진공상태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섹시하면서도 분절된 동작, 앞으로 구부리는 자세의 춤이 인상적이다. 조롱받으며 죽음으로 이끌리는 젊은 남자 역은 이원철·이동훈이 나눠 맡는다.

집시 카르멘과 군인 호세의 비극적 사랑을 따라가는 '카르멘'은 화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2006년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마츠 에크 안무의 '카르멘'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김지영·윤혜진·김현웅 등이 출연한다. '아를르의 여인'은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짝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린다는 착상부터 흥미롭다. 김주원·김리회·윤전일·정영재의 춤을 볼 수 있다.

▶15~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