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名지휘자 알아보는 명품 안목!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6.24 03:03

[클래식 ABC] 악단의 숨은 일꾼 '스태프'

지난 13일 타계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전 행정감독 에른스트 플라이슈만. 전 세계의 젊은 지휘자들을 발굴한 혜안으로 미국 오케스트라의‘산증인’으로 불렸다. /로이터
지난 2004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가 열렸을 때, 당시 80세의 에른스트 플라이슈만(Fleischmann)이 심사위원석에 앉아있었습니다. 지휘와 피아노를 전공한 플라이슈만은 17세부터 음악비평가로도 활동했고, 30년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총감독과 행정감독으로 이끌었던 미국 교향악단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당시 참가자 가운데 23세의 베네수엘라 청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것도 그였지요. 두다멜이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자 이듬해 LA 필하모닉의 야외음악회인 할리우드 볼 무대에 초청해 실력을 검증했고, 발 빠르게 베네수엘라로 날아가 영입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009년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이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로 옮겨가려고 물러났을 때, 후임은 두다멜의 몫이었지요.

지난 13일 지병으로 타계한 플라이슈만은 젊은 지휘자들을 발굴하는 데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높았습니다. 1989년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이 악단을 떠났을 때, 30세의 핀란드 지휘자 살로넨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도 역시 그였지요. 현재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26세 때 LA 필하모닉을 통해 미국에 데뷔한 것도 그 덕분입니다. 래틀, 살로넨, 두다멜은 플라이슈만이 발탁한 대표적인 지휘자 3명으로 꼽힙니다. 이미 명성이 확립된 거장들을 영입하는 미국 동부의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LA 필하모닉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차세대 지휘자들을 한발 앞서 끌어들였던 것에는 분명 플라이슈만의 혜안이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을 스태프(staff)라고 부릅니다. 대표(president), 총감독(executive director), 행정감독(managing director)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악단의 인사와 재정, 마케팅과 후원 유치까지 살림을 도맡아 합니다. 플라이슈만은 월트 디즈니의 부인 릴리언 여사의 후원을 이끌어냈고, 2003년 완공된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미국 서부의 대표적 음악당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플라이슈만처럼 세계적 명문악단 뒤에는 묵묵히 일하는 유능한 행정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베를린 필에서 카라얀을 보좌하면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이먼 래틀 같은 지휘자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볼프강 슈트레제만(Stresemann), 영국 런던 심포니의 첼리스트 출신으로 이 악단에 이어 지금은 뉴욕 카네기홀을 이끄는 클라이브 길린슨(Gillin-son) 경 등이 대표적입니다. 무대에 서는 지휘자와 단원들이 백조의 아름다운 날갯짓이라면, 무대 아래서 궂은 일을 도맡는 이들은 수면 아래서 열심히 퍼덕거리는 백조의 발짓과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