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협연하다… 지휘하다… '멀티플레이어' 조슈아 벨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6.24 03:04

英 체임버오케스트라 '아카데미…' 내한공연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영국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내한공연. 단원들은 이미 무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지휘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협연자인 명(名)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Bell)이 악장 자리에 앉아서 눈짓으로 단원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첫 곡인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부터 지휘자 없이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앙상블을 선사하는 모습은 영국식 의회민주주의와도 묘하게 닮아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가운데)이 영국의‘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협연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서곡이 끝나자 조슈아 벨은 이번엔 독주자로 돌아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을 협연했다. 벨이 앉았던 악장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단원들이 한 자리씩 당겨서 앉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무대 한복판에 선 벨은 특유의 깨끗하면서도 우아한 현(絃)으로 옅은 광채를 내면서 감미롭고 달콤한 작곡가의 감수성을 한껏 살렸다. 벨은 바이올린의 독주인 카덴차(cadenza)를 직접 썼고, 독주를 잠시 쉬는 동안에는 활 끝으로 지휘를 대신하며 '멀티플레이어'의 면모를 과시했다.

영국 런던 트라팔카 광장의 교회 이름에서 비롯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는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외치며 자살을 기도하는 첫 장면에서 울려 퍼지던 명징하고도 또렷한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악장이 이들의 솜씨다. 지휘자 네빌 마리너와 1000여장의 음반을 출시하면서 '녹음 기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 다시 조슈아 벨은 악장 겸 지휘자로 돌아왔고, 앙코르로 들려준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까지 줄곧 호쾌하게 질주하며 속력을 높여갔다. 조슈아 벨은 공연 전 인터뷰에서 "평생 10여곡의 협주곡만 연주하면서 지내는 건 음악가로서 위험하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직접 참여하고 지휘도 겸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서 지휘봉은 없었지만, 영국 특유의 산뜻한 연주 덕분에 굳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