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한의 예술의 잔당들] 뮤지컬 '빨래'

  • 스포츠조선 권영한 기자

입력 : 2010.06.21 10:57

"내 영혼도 세탁이 되나요"

뮤지컬 '빨래'는 오래된 세탁기 같다.

기계적 성능은 최신 세탁기에 못 미치지만 묵은 때가 후련하게 빠진다. 초연 이후 6년째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서나영(최보광)은 고향 강원도를 떠나 5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어느날 자신이 사는 달동네 옥상 맞은편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몽골 청년 솔롱고(정문성)를 만난다.

"안녕하시이까"라며 어색하게 웃는 솔롱고의 순수함에 나영도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연다. 서점에서 일하던 나영은 동료 언니를 부당해고하려는 사장(이영기)의 횡포에 맞서다 자신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솔롱고는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채 세달치 월급을 체납당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상처뿐인 두 사람의 영혼은 과연 따뜻한 쉴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뮤지컬 '빨래'는 소시민과 이주노동자의 눈을 통해 도시의 고단한 단면을 직시한다. 유명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은 결코 짚어낼 수 없는 우리만의 현실이 '빨래' 안엔 담겨 있다. 무대 세트는 비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사는 달동네를 재현했다. 옥상마다 바람에 펄럭이는 알록달록한 빨래가 만국기처럼 각양각색이다.

공연 중간중간 중년의 관객은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자꾸만 고개를 끄덕였다.

밀린 월세와 한 달 화장실 사용료, 수도 계량기 때문에 세입자는 늘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피해다녀야 했다. 밀린 스타킹 빨래를 오징어 말리듯 빨아 널고, 이불 빨래는 김장김치를 담그는 큰 대야에 담아 발로 주무른다.

'빨래'가 만들어진 건 6년 전이었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으로 출발해 이듬해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 극본상을 탔다.

지난해엔 배우 임창정이 주인공 솔롱고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그는 당시 "마음 같아선 10년간 계속 출연하고 싶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작사인 명랑씨어터 수박의 이지호 프로듀서는 "뮤지컬적인 완성도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과분한 팬들의 사랑을 감사해했다.

그의 말대로 뮤지컬적인 문법과 화음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장점을 변색시킬 정도는 아니다.

'내 영혼도 세탁이 될까.'

'빨래'를 보는 동안 든 생각이다.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손으로 빡빡 문지르고 발로 꾹꾹 밟아서 살아온 세월의 뗏국물을 쏙 빼고 싶을 것이다.

예술의 역할이 '영혼의 정화(카타르시스)'라면 뮤지컬 '빨래'의 세탁력은 별 다섯개를 주기에 충분했다.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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