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한미방위조약 체결은 자랑스러운 역사"

  • 이한우 기자

입력 : 2010.06.14 03:10 | 수정 : 2010.06.27 20:17

연극 '6·25전쟁과 이승만'무대 올리는 연출가 정진수 교수
종전 직전 반공포로 석방반공투사 처칠도 '충격'우리 국민만 중요성 몰라
난 이념·사상 잘 몰라그저 상식적으로 생각지도자 리더십 긍정할뿐
재미보다 의미 추구한 작품30~40대들이 자녀와 보고토론의 소재로 삼았으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제작해 국내 뮤지컬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연출가인 정진수(鄭鎭守ㆍ66)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내 연극계에서는 최초로 이승만 초대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6·25전쟁과 이승만'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반공포로 석방이 전격 단행된 지 정확히 57년이 되는 6월 18일부터 6월 27일까지 (재) 한국공연예술센터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민중극단이 공연하는 이 작품의 대본과 연출을 맡아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정 교수를 연습실이 있는 광화문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 창으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월드컵 그리스전 응원을 위해 붉은 악마들이 속속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암4기 진단을 받고 대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라 했지만 그의 얼굴에 병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연출가 정진수 교수는 “이번 연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정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려는 것”이라며 “상업주의 에 물든 우리 연극계에 사회성 강한 작품을 들이대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해보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연극무대에 올린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작년 8월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문화계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년이 6·25전쟁 60주년인데 우리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나왔다. 대부분 찬성은 했는데 막상 하려다 보니 영화나 대하소설을 1년 만에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용이나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곤란하고. 다들 연극이 그나마 좋겠다고 말들 하는 바람에 '총대'를 메게 됐다."

―대본을 보니 이야기는 1953년 6월 종전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단행된 2만7000명의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중심이던데.

"작년 8월 대학에서 정년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 이승만 공부에 착수했다. 마침 연세대 유영익 교수의 연구서가 나와 전체적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됐고 후배 교수이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교수가 6·25 당시 국내정치와 미국의 역학관계를 조명한 뛰어난 논문들을 발표해 반공포로 석방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이승만을 연극화한다 해도 90년 생애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을 텐데 굳이 반공포로 석방과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뭔가?

"물론이다. 이승만을 찬양하고 감동을 줄 목적이었다면 아마도 6년 가까운 감옥 시절을 하는 게 더 손쉬운 방법이었을지 모르겠다. 공간은 한정돼 있고 한 일은 많았으니까. 그는 감옥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영한사전을 만들었으며 새로운 국가의 비전을 담은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도서관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혁명가이자 교육가로서 이승만이 가장 빛났던 대목이다. 그러나 2010년이라는 시점과 특별한 인연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올해는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로 연극을 만들 수야 없지 않겠나. 독립운동이나 임시정부 초대대통령,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되는 과정 등도 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나 책으로 보는 게 나을 듯하고. 결국 생각해 보니 그분 생애 90년 중에서 우리 국민을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역시 6·25전쟁으로 파생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다. 요즘 주변 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조약 체결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추적해 보니 미국이나 영국 등 우방국들마저 깜짝 놀라게 하며 단행했던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반공의 투사였던 처칠 총리도 아침에 면도하다가 포로석방 소식을 듣고 얼굴을 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정작 우리 국민은 그 중요성도 모르고 그런 업적을 홀로 이루어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조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 해도 반공포로 석방과 상호방위조약을 둘러싼 한미 간의 외교전을 연극무대에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사건의 중요성에 비해 그것을 무대화하는 데는 제약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공간도 '경무대 집무실'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대본을 만들어 놓고 보니 스스로 절망감마저 들었다. 초고를 읽어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거야 역사 교과서 아닌가'라고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고심을 거듭하며 연극적 장치를 하나둘씩 보강하면서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재미는 없겠다.

"솔직히 이런 데 좀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주제 자체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번 작품은 관객들에게 재미가 아니라 의미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책으로는 안 읽어도 영화는 보듯이 연극으로 그 사건을 쉽게 본다면 그것도 좋지 않겠나."

―재미는 그렇다 치고. 이 작품을 보게 될 관객들이 무슨 의미를 느꼈으면 좋겠는가?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어디서 출발해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관객들이 '그때 이승만이 없었더라면', '그때 반공포로 석방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면' 정도의 의문만 갖고서 극장을 나가도 이번 작품은 대성공이라 생각한다. 20대는 그렇다 쳐도 30대와 40대들이 자녀들과 함께 와서 보고 토론의 소재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이런 장르가 있는지 모르지만 일종의 역사교육극이라 할 수 있겠다.

"글쎄. 구상단계부터 함께 의논했던 소설가 복거일씨는 이 작품을 보더니 정치극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정치극이 되려면 거기에 내 이념이랄까 해석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 작품은 99% 실존인물의 실명을 사용했고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 굳이 말하면 정치기록극이다. 그것을 통해 관객들이 교훈을 얻는다면 역사교육극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념을 배제하려 했다고 하지만 결국 우파의 정치해석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이념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이념을 주입시키려 하지 않았다. 과거에 있었던 일 중 누가 보아도 자랑스러운 일에 초점을 맞춰 그것을 연극적으로 충실히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과 그것을 통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부끄러워하고 매도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있다. 그런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도 이런 연극은 앞으로 계속, 그리고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연극을 통한 좌파와의 투쟁인가.

"난 연극하는 사람이라 거창하게 이념이나 사상이니 하는 것은 잘 모른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아마 현재 우리나라가 이룩한 성취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연하게 국민이 잘나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발휘한 리더십을 부정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네들 지도자는 무슨 민주주의의 세계적 지도자인 양 말한다. 국민도 중요하고 지도자도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라틀을 만든 지도자로서 이승만을 공부해 보니 과도 많지만 공도 많았다. 더욱이 자유와 민주의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고 특히 미국과의 대립 갈등을 불사하면서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뺏어내다시피 한 것은 약소국 지도자로서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그걸 재조명하자는데 우파니 보수니 한다면 난 우파요 보수다."

―원래도 우파 성향이었나.

"난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다. 무역회사 다니던 대학후배 문성근이 날 찾아와 연극을 하고 싶다기에 '인생 뭐가 있다고 고민하냐'며 연극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나다. 2002년 대선 때도 노무현 찍었다. 그런데 그 후 문화계와 연극 쪽에서 좌파들이 하고 다니는 꼴을 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 이후 점점 그쪽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난 지금도 우파 운동 이런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우파건 좌파건 좋은 연극을 하면 된다."

―우리 영화계의 좌편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극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극단 '연우무대' 정도가 운동권이랄까 이념성향을 보였고 대부분의 극단들은 순수연극을 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연극계에도 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늘어났고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그 수가 상당했다. 그러더니 다시 우파 정권이 들어서자 '잠수'중이다. 또 슬슬 수면 위로 나오겠지."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 기꺼이 출연하겠다고 했는가?

"아마도 극단 이름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민중극단은 1963년에 탄생했고 그때의 민중이란 반(反)귀족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시민극단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당시의 민도가 시민이라고 하면 서울시민, 부산시민이라고만 생각했지 시티즌으로서의 시민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그때 시민극단이라고 했으면 사람들은 서울시에서 하는 시립극단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70년대 말 80년대 초를 거치면서 뜻이 바뀌어버렸다. 민중은 인민과 같이 사용되면서 좌파용어가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배우들은 열성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작품 후에는 다시 순수작품으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사회성 있는 작품을 계속 해볼 것인가?

"이번 작품에 보면 비중은 작지만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등장한다. 실제로 이 회장의 부친과 이승만 대통령은 친분이 깊었다. 또 광복 후 이 대통령이 대구를 찾았을 때 청년기업가 이병철을 만나 직접 격려한 적도 있다. 실은 이 회장의 등장 여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다음에는 기업인을 조명하는 연극을 해보겠다는 내 다짐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이병철 회장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선 이번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다음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기업인을 골라볼 생각이다."


연출가 정진수 교수는… 연출가인 정진수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서울생으로 서강대 영문과를 나와 중앙대 연극학과 대학원과 미국 일리노이대 연극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중극단 대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 8월 성균관대를 정년퇴직했다. 이론과 실무를 겸한 연극인인 정 명예교수는 그동안 ‘아가씨와 건달들’, ‘선각자여’ 등 100여편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