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6.08 03:15
中 현대미술가 쩡판즈
가식 뒤집어쓴 현대인 풍자
'가면 시리즈'로 세계적 주목
최근엔 인간 내면, 풍경화로…
"모든 일상이 내 영감의 원천"

중국 베이징의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르렀던 지난달 30일 베이징 차오창띠(草場地)에 있는 쩡판즈(曾梵志)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1964년 후베이성 우한에서 태어난 쩡판즈는 장샤오강·위에민쥔·왕광이·팡리쥔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 현대미술 작가다. 쩡판즈는 초기에 '병원 시리즈' '고기[肉〕시리즈'를 내놓은 이후, '가면 시리즈'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2000년 이후에는 '풍경 시리즈'로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실크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쩡판즈는 중국 남부에서 가져왔다는 기암(奇巖)과 앵무새가 있는 스튜디오 정원으로 나와 맞아주었다.
쩡판즈란 이름이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한 것은 '가면 시리즈'이다. 200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가면 시리즈'가 970만달러에 낙찰돼 중국 현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가면 시리즈'는 화면 속 인물들이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웃고 있지만 그것이 가식적인 가면임을 형상화했다. 쩡판즈는 '가면 시리즈'에 대해 "1990년대 베이징으로 옮겨와 생활하면서 얻은 영감에서 나온 작품"이라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 경험을 작품에 나타냈다"고 밝혔다. 베이징이라는 대도시에서 많은 사람과 의식적으로 사귀어야 하는 상황에서 작가가 느꼈던 심리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의 눈과 입을 커다랗게 그려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소외를 나타냈다. 가면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불안을 함께 보여줘 관람객에게 날카로운 인상을 남겼다.

쩡판즈는 풍경 시리즈에 대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먼저 추상화로 그려보면서 영감을 얻는다"면서 "중국 전통회화에 관심이 많은데 선으로 유화를 표현하기 위해 시작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물과 종이를 사용하는 동양화는 단순하면서도 유연하지만, 서양화는 나이프나 붓·기름을 사용하는 점에서 동양화와 다르다"면서 "서양화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닮게 그리는 것을 추구한다면, 동양화는 실사기법 위에 상상을 더해 그린다"고 말했다. 쩡판즈는 중국 송대(宋代) 문인들이 산수화(山水畵)에서 깊은 내면을 드러낸 것처럼, 자신도 내면의 풍경을 형상화했다고 밝혔다. 초기의 '병원 시리즈'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외부 환경을 묘사하고 '가면 시리즈'가 개인의 심리 상태를 나타냈다면, '풍경 시리즈'는 손에 잡히지 않는 제3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쩡판즈는 오는 8월부터 상하이 미술관(Rockbund Art Museum)에서 선보일 전시를 준비 중이라면서 "상하이엑스포 기간이라 중요한 전시"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과 함께 근처 성당에서도 동반전시가 이뤄진다며 성당에 전시될 조각작품 〈속죄양〉을 보여줬다. 그는 〈속죄양〉이 브론즈가 아니라 커다란 나무 하나를 깎아 만든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스튜디오 안에는 경매에서 구입했다는 베트남 불상(佛像)을 비롯해 중국 당대(唐代) 불상과 아트페어에서 샀다는 미술작품 등이 눈에 띄었다. 그는 "여행이나 음악,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면서 "새로운 것을 찾으면서 흥분을 불러 일으키고 흥분된 상태에서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쩡판즈는 "유행이나 형식만 따르다 보면 예술을 놓치게 되고 의미가 없어진다"며 "선과 색채를 통해 내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