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展 '그리스의 신과 인간'] 항아리와 눈 맞추니, 그리스가 보이네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0.06.07 02:52

'암포라'만 훑어도 고대인의 삶과 예술 한눈에…
경기 우승자에게 주던 양손잡이 도기선수들의 裸身·희로애락 '생생'
신화 속 인물로 빚은 술잔·보석함 그림엔 여인들 일상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전(展) '그리스의 신과 인간'을 둘러보면 각종 도기(陶器)에 그려진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달리기, 레슬링, 창던지기, 권투, 승마 등 다양한 운동경기 장면을 비롯해 벗은 몸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남성, 출정(出征)을 앞둔 전사(戰士), 춤을 추는 여성 등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과 희로애락이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돼 있어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테네에서 만들어진 대형 술잔‘환상의 듀엣’의 앞면과 뒷면.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수염이 나고 말의 귀를 가진 사티로스와 수행하는 여인인 마이나스를 형상화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도기는 총 51점. 크고 작은 항아리·술잔·물병·보석함·향수병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 놓인 21점의 암포라(몸통이 불룩하고 양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가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올리브유를 담은 암포라를 상으로 내렸다. 트로피의 원조격이다. 암포라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기름이 더 값진 것이었지만, 기름을 다 사용한 후에도 암포라를 기념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 왼쪽)암포라‘춤을 추는 5종 경기 선수단’. 고대 5종 경기 중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종목의 선수들이 행렬을 이뤄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오른쪽)‘카이리포스는 잘생겼다’는 문구가 새겨진 도기. 벌거벗은 청년이 창을 잡고 있다.

우승 기념 암포라 중 대표작은 '춤을 추는 5종 경기 선수단'이다. 고대 5종 경기 가운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의 세 종목 선수들이 행렬을 지어 춤을 추고 있는데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보인다. 선수들의 나신(裸身)에 드러난 팽팽한 근육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배가 나온 권투 선수'라는 술잔 그림도 재미있다. 왼쪽에서는 호리호리한 선수가 배 나온 권투 선수를 상대로 싸우기 싫은 듯 머뭇거리고 있고, 오른쪽에선 창던지기·원반던지기 선수가 매끈하고 우아한 몸매를 뽐내고 있다. 당시 권투선수는 배가 많이 나와야 상대방이 머리를 때리기 힘들어진다고 여겨서 배 나온 권투선수가 많았다.

고대 그리스의 각종 운동경기는 전쟁을 위한 훈련의 일환으로, 신체 단련을 위한 시민들의 사회적 의무였다. 도기에 재현된 운동경기 장면을 통해서 건강한 신체를 통해 건전한 정신을 추구했던 그리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암포라 그림에는 수사슴·수평아리를 선물로 주면서 구애(求愛)하는 세 쌍의 동성애 커플 등 남성 간 동성애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젊은 청년과 나이 든 남성 사이의 동성애는 고대 아테네 문화의 일부였고, 구애의 대상인 젊은이들은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여성들의 일상’.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향수병을 들고, 상자에서 목걸이를 꺼내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렸다.
여성들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많다. 화장품함 혹은 보석함으로 생각되는 '여성들의 일상'에는 리본으로 머리를 묶거나 털실을 감고 있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당시 일반 부녀자들의 삶을 그린 것으로, 털실을 짜는 것은 상류층 여성들에게 적합한 품위 있는 일로 간주되었다. 이밖에 헥토르를 끌고 다니는 아킬레우스, 올림포스에 입성하는 헤라클레스, 술을 마시는 디오니소스 등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과 이야기들도 암포라 속에 빼곡히 담겨 있다.

아테네의 도기들은 종종 독특한 동물이나 이국적인 인간의 두상(頭像)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리스 신화 속 사티로스와 마이나스의 머리를 절반씩 붙인 독특한 형태의 술잔도 보인다. 전시는 8월 29일까지. 관람료 일반·대학생 1만원, 중고생 9000원, 초등학생 8000원, 만4세 이상 유아 6000원. (02)720-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