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6.03 03:08

연극 '내 사랑 DMZ' 연출가 오태석… "동물들이 전사자에게 제사 지내는 장면 상상"
"더는 전쟁의 비극 없어야… 젊은층에게 들려주고 싶어"
6·25 참전 16개국 투어도

"나 죽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을까 했는데 갈수록 암담하네요. 아버지 관(棺)에 북녘의 흙이라도 한 줌 넣어 드려야 하는데…."

연출가 오태석(70)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6·25전쟁 당시 납북(拉北)된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노모는 지난 2004년 영영 눈을 감았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묘에 아버지의 빈 관을 묻었다. 오태석은 "열한 살 때 터진 전쟁이 내 평생을 결정지은 조건이었다"면서 "피란 간 충남 서천에서 나무를 하면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바라보던 내가 지금도 보인다"고 했다.

연출가 오태석은“연극‘내 사랑 DMZ’는 한국인이 버릴 수 없는 조건인 DMZ에서 동물들로부터 배우는 이야기”라고 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1일 오전 서울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무대에는 덧마루를 올리고 있었고, 소품 만드는 망치질 소리도 차올랐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4일 연극 '내 사랑 DMZ'(오태석 작·연출)를 올리는 극단 목화의 오태석은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고 60년 전 이 땅에 묻힌 젊은 병사들의 죽음도 미완성"이라며 "국군과 인민군, 참전 16개국 병사들까지 불러내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내 사랑 DMZ'는 "병사 돌려보내라" "못 보낸다"는 방송이 들리고 철도 부설 작업으로 지뢰가 펑펑 터지면서 출발한다. 여우·오소리·황새·노루·곰 등 30여종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오태석은 "인간의 손발이 닿지 않는 DMZ에서 평화롭게 사는 네발짐승과 날짐승들이 6·25 때 숨진 병사들에게 제사상을 차려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쓴 작품"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겐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는 지혜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전쟁으로 갈라진 가족들은 엄청난 짐을 지고 삽니다. 나 또한 아버지 없이 벌판에서 자란 거예요. 집안에 룰(rule)도, 기둥도 없었던 겁니다."

연극 '자전거' '만파식적' 등에서 전쟁의 상흔을 드러냈던 이 극작가 겸 연출가는 "내가 연극이라는 허구에 천착한 것도 어쩌면 그것은 하루아침에 뒤집히지 않는, 믿을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태석은 또 '사람이 쓴 마스크(가면)를 벗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연극'이라고 정의했다. "관객에게도 꾸며진 허구(연극)는 안전하니까 비로소 잠깐 민얼굴이 돼 울고 웃는 것"이라고 했다.

"뱃사람들은 '널빤지 밑이 저승'이라고 말해요. 삶과 죽음이 그렇게 가깝게 있습니다. 연출가 입장에서 연극은 고해성사지요. 모자란 나를 목격해야 하니까. 물 새는 데가 보일 때마다 자책하고 쩔쩔맵니다. 관객이랑 부딪쳐 쩍쩍 소리 나는 연극은 3할도 안 돼요."

그래도 오태석은 스스로 "철이 없다"고 할 만큼 실험정신으로 뭉쳐 있다. 그는 "연필 꼭지에 지우개가 달렸듯이, 틀려야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안양쯤 가면 이럴 것이고 수원쯤 가면 또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면 번번이 틀려요. 관객은 꼭 딴 데서 터집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해요."

오태석의 연극은 생략과 압축으로 속도를 낸다. '내 사랑 DMZ'에서 마지막에 남을 단어는 '보은(報恩)'이란다. 그는 "DMZ의 저 동물들이 바로 전우(戰友)들의 음덕(陰德)"이라면서 "동물들의 시선을 사람들이 읽어낼 차례"라고 했다.

'내 사랑 DMZ'는 오는 25~26일에 호주, 7월 16~25일엔 영국에서 공연한다. "6·25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을 추진 중"이라는 오태석은 "추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들의 '살아 있음'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4~13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02)745-3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