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몰라도 뭉크를 몰라도… 심장이 절규하네

  • 오슬로=곽아람 기자

입력 : 2010.05.17 03:11

뭉크 미술관 여름 전시회

지난 7일 아침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 앞은 건조한 북구(北歐)의 햇살을 받으며 줄지어 선 사람들로 붐볐다. 평생 신경증으로 고통받았고, 내면의 어둠을 화폭에 분출했던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술관 정문에는 뭉크의 '결별'(1896)이 프린트된 하늘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난달 30일부터 9월 26일까지 열리는 여름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유언에 따라 오슬로시에 기증된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1963년 개관했다. 현재 소장품은 회화 1100여점, 드로잉 4500여점, 판화 1만8000여점 등이고,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12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은 약 300점으로,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1893)와 '마돈나'(1893~1894)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7일 뭉크 미술관에서 뭉크의‘절규’를 흉내 내는 독일 관람객 미리암 호프만씨(왼쪽)를 아버지 폴커 호프만씨가 바라보고 있다. /오슬로=곽아람 기자
10시 정각에 문이 열리자 미술관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큰 짐은 보관소에 맡기고 휴대용품은 X선 검사대에 올려놓은 뒤 검색대를 통과했다. 공항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보안 시스템은 이유가 있다. 뭉크 미술관은 지난 2004년 8월 '절규'와 '마돈나'를 무장강도에게 도난당했다가 2년 만에 되찾았다. 작품은 돌아왔지만 '절규'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남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뭉크가 결핵으로 숨진 누이를 그린 '병든 아이'(1925)가 보였다. 죽음을 앞둔 소녀의 핏기 없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뭉크는 5세 때 어머니를, 14세 때 누이를 결핵으로 잃었다.

'키스' '마돈나' '뱀파이어' '결별' '여름밤' 등 작품을 통해 사랑·욕망·고통 등을 그려낸 '생(生)의 프리즈(frieze)' 연작(1890년대)도 눈길을 끌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라우스 우덴(54·자영업)씨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누구나 뭉크의 '마돈나'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역시 '절규'였다. 뭉크는 다양한 재료로 여러 버전의 '절규'를 그렸다. 핏빛 노을이 지는 피오르를 배경으로 귀를 막은 채 한껏 내면의 소리를 발산하는 일그러진 인물 앞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그림을 흉내 내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독일에서 온 미리암 호프만(31·대학원생)씨는 "그림의 배경을 비롯한 모든 것이 움직이면서 보는 이의 감정을 고조시킨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온 미셸 벨리(61·대학교수)씨는 "붉은 하늘이 보들레르의 시(詩)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리사 뮤스(52) 뭉크미술관 부관장은 "국적·인종·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절규'를 보고 저마다 강렬한 무언가를 느낀다"면서 "미술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림에 대해 개인적인 '느낌(feeling)'을 갖도록 하는 것이 뭉크의 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