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이 세상을 바꾼다] [4]기업도 예술로 업그레이드

  • 시애틀=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5.13 03:00

'예술가의 작업실' 같은 카페… 커피는 조연일 뿐
"영화·음악·책·미술·공연… 커피+스타벅스 美學 팔아
'붕어빵 매장' 점점 없애고 지역마다 다른 감성 살릴 것"

지난달 27일 오후 7시 50분(현지시각) 미국 시애틀의 카페 '로이 스트리트 커피&티'. 점원들이 매장 구석을 붉은 커튼으로 가리자 독립된 공간(10m×10m)이 만들어진다. 입구에는 작은 칠판에 '영화 상영, 오늘밤 8시'라고 적혀 있다. 안쪽에는 벌써 10여 명의 '관객'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바깥 테이블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세 명은 "스터디 브레이크(study break)!"라며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스타벅스가 지난해 11월 오픈한 테스트 매장이다. 간판에 보일 듯 말 듯한 크기로 '스타벅스에서 영감을 받은(inspired by Starbucks)'이라고 뿌리를 밝혔을 뿐, 친숙한 스타벅스 로고조차 보이지 않는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있다는 게 이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자콥 웨버(Weber) 점장은 "일주일에 4번 영화를 상영하고 가벼운 공연과 전시도 가능하다. '미래의 스타벅스'로 디자인된 매장"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테스트 매장인 시애틀의‘15번가 커피&티’에서 고객들이 밴드의 연주회를 감상하고 있다(위). 대형 그림이 걸려있는 또다른 테스트 매장인‘로이 스트리트 커피&티’에서 고객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아래). /스타벅스 제공·박돈규 기자
이날은 시애틀국제영화제(SIFF) 출품작 중 '셀라미' 등 우수 단편영화 3편이 관객을 만났다. 그중에는 하워드 슐츠(Schultz) 스타벅스 회장이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도 있었다. 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한 케이트 골든(Golden)씨는 "이 매장은 벽에 걸린 미술품 등 디자인이 특별하고 예술적인 발견도 할 수 있어 더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4월 30일에는 이 공간에 어쿠스틱 밴드의 연주회가 잡혀 있었고, 매장 한쪽에서는 음반·영화DVD도 판매 중이었다.

스타벅스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경영이다.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서 따온 이름과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온 로고에서부터 상품, 매장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통하는 스토리텔링을 하는 이 기업은 음악·책·미술·공연·영화 등을 접목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고객은 '스타벅스 미학'을 구매하는 셈이다.

4월 26~27일 스타벅스 시애틀 본사에서 언론인을 대상으로 열린 '커피 칼리지(coffee college)'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공간은 9층 디자인 부서들이었다. 스타벅스가 준비 중인 새로운 매장 디자인은 친환경 재활용품을 사용하면서 예술적인 감각을 장착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를 겨냥해 준비중이라는 매장은 와인의 오크통을 이용한 게 특징이었다. 와인 오크통을 잘라서 매장 전면을 장식하고 탁자와 의자의 재료로도 쓰는 콘셉트였다.

캄비 헤마티(Hemati) 디자인 담당 디렉터는 "의자·조명의 형태부터 재질·촉감까지 예술가의 스튜디오 같은 콘셉트를 추구한다"면서 "과거엔 모든 매장이 복제라도 한 듯 비슷한 느낌이었다면 최근엔 지역문화(local culture)와 예술을 존중하며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다양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해 수많은 종류의 커피를 판매하듯이, 매장도 지역마다 다른 예술적 감성으로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2008년 4월 아이튠스(iTunes)와 함께 '금주의 선곡(Pick of the week)'이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 고객은 아이튠스에서 무료로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다. 음악은 스타벅스 엔터테인먼트팀과 아이튠스가 함께 선곡하는데 밥 딜런, 안드레아 보첼리처럼 대중적인 '커피 하우스 뮤직'부터 무명 아티스트의 음악까지 다양하다.

세계의 스타벅스 고객이 매장에서 듣는 음악은 티모시 존스(Jones)의 귀를 통해 선곡된다. 6명으로 구성된 스타벅스 본사의 콘텐츠&온라인 팀을 지휘하면서 1년에 11~12개의 CD를 매장에 배포하는 존스는 "같은 음악도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친숙한 사운드와 낯선 사운드를 섞어 새로운 경험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정 시간·장소와 음악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는 그는 "매장 자체가 음악을 도구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고, 그것은 수익과도 직결될 수 있다"고 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판매하는 30여종의 원두 패키지(250g)에 실린 디자인은 원산지 화가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지역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커피 교육을 담당하는 앤마리 커츠(Kurtz)씨는 "스타벅스 직원들은 DJ·큐레이터·프로듀서·연출가 같은 직함만 없을 뿐 사실상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