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의 巨匠에게 듣는다] "오타쿠 문화도 예술이거든요"

  • 도쿄=손정미 기자

입력 : 2010.05.10 23:26

'일본의 앤디 워홀' 무라카미 다카시

세계무대에서 활동 중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지난 28일이었다.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무라카미는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그는 2001년 미국 LA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풀어낸〈수퍼플랫(Superflat)〉전(展)을 기획하면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해 자신을 포함해 젊은 작가 7명의 전시와 작품판매 등을 주관하는 기획사 ‘카이카이키키(Kaikai Kiki)’를 세워 작가와 기업가, 화랑의 경계를 허무는 새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2008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무라카미는 헐렁한 청바지와 분홍색 면티셔츠를 입고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카이카이키키 사무실에 나타났다. 무라카미는 〈수퍼플랫〉전을 기획한 의도에 대해 "일본 현대미술은 2차 세계대전 후 성장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면서 "일본이 서구 문화를 거부한 것도 아닌데 세계에 일본 미술의 로컬리즘을 잘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퍼플랫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망가)를 현대미술과 접목했다"며 "일본의 (망가와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오타쿠 문화는 힘이 솟구치고 있어, 전시를 통해 '예술'의 경지에 오른 오타쿠 문화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오타쿠 문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겠다는 것으로, 그의 작품 역시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서 가져온 이미지가 많다.

세계 미술계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사진=GION

무라카미는 카이카이키키를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미술에도 연예기획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프로듀서가 선정한 연예인이 데뷔하는 것처럼 재능있는 작가를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토마토를 키우는 것처럼 즐겁다"면서 "씨를 뿌릴 때부터 출하할 때까지 돌봐주는 것이 카이카이키키다"고 설명했다.

무라카미는 일본 에도시대의 호쿠사이와 히로시게의 목판화가 유럽 인상주의에 영향을 끼쳐 '자포니즘(Japonism)'을 낳았던 것을 떠올리며, 새로운 자포니즘을 꿈꾸는 야심가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문화를 핵(核)으로 세계무대에서 일본 미술의 위치를 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는 2002년 일본의 현대미술 시장이 충분히 커지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젊은 작가 중심으로 '게이사이'라는 미술 시장과 콘퍼런스를 합친 축제를 만들었다. 일본뿐 아니라 대만에도 '게이사이'를 열었던 그는 "한국에도 '게이사이'를 만들고 싶다"며 "젊은 작가들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튜닝해주면 좋다"고 밝혔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AND THEN(Rainbow)〉(2006) (사진 왼쪽)과 〈Flowerball Sexual Violet No.1〉.(2008) /에마뉘엘 페로탕 갤러리 제공, 저작권 무라카미 다카시/Kaikai Kiki

무라카미측은 인터뷰를 마치고 사이타마현에 있는 카이카이키키 스튜디오를 공개했다. 공장형 스튜디오에서는 조수들이 무라카미와 카이카이키키의 작품을 24시간 교대로 제작하고, 뉴욕에도 스튜디오가 가동 중이다. 미국 현대미술 작가인 앤디 워홀이 작품을 대량제작한 '팩토리'를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일본의 앤디 워홀'이란 말을 듣는 무라카미는 "앤디 워홀의 작업량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며 "전만큼 그 소릴 자주 듣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무라카미는 매일 자정쯤 스튜디오로 와서 작업을 점검하고 새벽 6시쯤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독신으로 사무실 소파에서 자는 그는 "항상 세상에서 히트칠 게 뭔지 생각하며 지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