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恨 품은 '햄릿' 루마니아를 매혹하다

  • 크라이오바(루마니아)=오윤희 기자

입력 : 2010.05.05 23:35

이윤택 연출작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서 호평

무대를 뒤덮은 천을 찢고 등장한 원혼(寃魂)들이 애절한 씻김굿 방울 소리를 따라 피안(彼岸)의 세계로 사라지면서 막이 내리자, 1000석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연방 "브라보!"를 외치는 사람,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기립박수는 12분간 이어졌다.

지난 3일 밤(현지시각) 9시 30분 '제7회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루마니아 크라이오바(Craiova) 국립극장. 한국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연출 이윤택)을 접한 관객들은 들끓는 에너지와 동양적 한(恨)의 정서가 한데 녹아 있는 '낯선 햄릿'에 매료된 듯 보였다. 미르차 코르니스티아누(Cornisteanu) 국립극장 총감독은 "소름이 돋을 만큼 박력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햄릿'이었다. 이번 페스티벌 최대의 성과다"라고 말했다. '햄릿'을 주제로 한 이번 페스티벌에는 네크로슈스(리투아니아)·오스터마이어(독일) 등 세계 정상급 연출가를 비롯해 11개국을 대표하는 연극들이 참가했다.

이윤택 연출의‘햄릿’에서 무덤지기가 무덤 밖으로 나오는 장면. /연희단거리패 제공
한국식 '햄릿'의 성공은 상연 초반부터 감지됐다. 막이 오른 지 30분 뒤 광대패가 등장하자 처음 나온 박수는 죽은 왕의 혼령이 광기에 허우적대는 햄릿과 왕비를 말없이 감싸 안을 때, 레어티즈가 무덤 속에서 흙범벅이 된 오필리어를 껴안고 절규할 때 등 7번이나 터졌다. 이틀 전 10여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성공리에 끝난 오스터마이어의 공연 때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연극평론가들은 셰익스피어라는 서양의 유산 속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히 버무려진 동양적 색채를 높이 평가했다.

물론 일부 젊은 관객들 사이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크라이오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스테파니(22)는 "다른 '햄릿'에 비해 산만하고, 배우들도 너무 감정에 치우친 것 같았다. 새롭긴 했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윤택은 무덤지기의 풍자 연기에서 과장성을 덜어내고,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를 누그러뜨려 유럽 관객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한편 극중 인물들의 영혼이 치유되는 씻김굿 장면의 극적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연극평론가 아드리안 미할라케(Mihalache)는 "팬터마임·민요·탈춤 같은 다양한 표현 기법, 무대에서 실제로 물과 흙을 뿌리는 독특한 발상이 유연하게 이어져 마지막까지 관객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