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5.04 15:10
엠마누엘 파후드・트레버 피녹・조너선 맨슨 트리오

지난 2008년 12월, 엠마누엘 파후드의 바흐 플루트 소나타 전집 녹음 발매와 더불어 앨범의 주인공인 파후드와 피녹, 맨슨의 내한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연주회를 앞두고 피녹의 급작스러운 수술로 취소되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만큼 공연 전부터 회자되며 기대를 모았던 연주회였기에 아쉬움도 컸다. 올 5월 22일, 이들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모인다.
스물두 살에 베를린 필의 수석 플루티스트 자리를 차지했던 파후드는 1998년 첫 내한 이후 네 차례의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그간 내한에서는 슈베르트・풀랑크・브람스 등 낭만주의 작품을 주로 연주해 정교하면서도 빛나는 색채감으로 찬사를 받았다면, 이번에는 바흐의 작품을 중심으로 바로크 음악에 대한 음악적 깊이와 역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근 10년 사이에 그의 바로크, 고전주의 작품에 대한 통찰과 표현력은 놀랍도록 깊고 풍부해졌는데, 1995년 라이너 쿠스마울과 베를린 필 단원들이 결성한 베를린 바로크 솔로이스츠와의 활동이 18세기 음악에 대한 그의 음악적 이해와 스타일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주로 협주곡을 중심으로 연주하면서 관현악적 배경에 기댈 수 있었다면, 시대악기 연주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유러피언 브란덴부르크 앙상블의 지휘자 트레버 피녹, 동 앙상블의 수석 첼리스트이자 비올 콘소트 앙상블 판타즘의 창단 멤버인 조너선 맨슨과 함께한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전집 녹음에서는 양식의 문제, 작품 자체가 요구하는 조화와 균형의 문제를 콘티누오 주자들에게 기대지 않고 대등하게 풀어냈던 만큼 이번 연주가 기대된다.
시대악기 연주와 현대악기 연주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면서 현대악기로 역사적 연주 관습을 좇아 연주하는 일을 단순히 절충주의라고만 부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절충주의가 시대악기 연주를 할 수 없는 데 따른 일종의 대안이라면, 최근의 경향은 오히려 두 만남이 빚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영역으로 나아간다. 파후드는 바로크 작품을 연주하면서 금속 플루트의 차갑고 매끄러운 소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옛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고, 비브라토를 기계적으로 거세한 지루한 연주로 작품을 생명 없는 밀랍 인형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리듬 구조와 관련 맺은 명료한 아티큘레이션과 섬세한 호흡으로 음 하나하나에 독특한 뉘앙스를 불어넣는 역사적 연주 양식을 이해하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자신의 개성임을 잊지 않는다. 그의 바흐 연주는 바른 철학과 기량이 있다면 현대 플루트 역시 작품의 음악성을 드러낼 수 있는 충분한 도구가 된다는 점을 증명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그때도 지금도 피리 속을 흐르는 것은 영감에 찬 뜨거운 숨이 아니겠는가.
연주회의 스포트라이트는 파후드에 있지만, 헨델의 샤콘느 G장조를 연주할 피녹의 하프시코드 독주, 바흐의 모음곡 1번을 연주할 맨슨의 첼로 독주 역시 기대된다. 실내악 연주회에 세 명인을 모셔두고 작은 독주회까지 겸한 셈이다. 기대할 만한 연주자들, 알찬 프로그램, 현대음악계의 주요 시사점을 던져주는 기획으로 올해 주목할 연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파후드・피녹・맨슨 트리오
일시 : 5월 22일 14시 30분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 1577-5266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