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투쟁은 눈부시고 강렬하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4.28 23:49

'광부화가들' '빌리…' 쓴 극작가 리 홀
탄광촌 배경으로 계층문제 그려 "그냥 웃고 잊어버릴 얘긴 안 써"

"좋은 드라마? 중요한 건 세 가지다. 관객을 생각하게 해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하고, 웃음도 줘야 한다. 나는 그냥 오락일 뿐인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지난 1일 런던의 워킹타이틀 본사에서 만난 리 홀(Hall·44)은 청바지 차림에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다. 가끔 생각에 잠길 때도 있지만 극작술에 관해서는 확신으로 답했다.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인 홀의 작품 두 편이 올해 처음 한국에 소개된다. 5월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광부화가들', 8월 13일부터 서울 LG아트센터를 채우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다. 둘 다 탄광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홀은 "어두운 갱도 안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일과 그들을 비추는 내 작업은 닮은꼴이다. 영국에서 이제까지 작가들이 거의 다루지 않았던 소재"라고 했다.

‘빌리 엘리어트’‘광부화가들’의 작가 리 홀은“공동체가 함께 꿈꾸는 성공 스토리를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매지스텔라 제공
연극 '광부화가들'은 미술 감상 수업을 받는 광부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치려다가 벽에 부딪힌 강사는 '당신들의 실제 삶을 그려보라'고 주문한다. 홀은 "광부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는데, 그들이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림으로 유명해지지만 매일 탄광에 들어가 일을 한다. 자신이 광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예술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삶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

홀은 영국 북부 뉴캐슬의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내 부모도 노동자였고, 자라면서 광부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며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해 내 작품 대부분은 계층 문제를 다룬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하층민의 투쟁에는 통증이 따르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섬광(閃光)은 아름답다. 그것을 포착하려고 한다."

‘광부화가들’에서 광부들은 낮에는 석탄을 캐고 밤엔 그림을 그린다. 어느순간 그들의 인생과 미술이 겹쳐진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광부화가들'은 2007년 뉴캐슬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영국 국립극장에 오른 뒤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에서 최고연극상을 차지했다. '빌리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비(非)영어권 공연은 한국이 처음이다. 한국 초연은 이상우가 연출하고 이대연·윤제문·권해효·문소리 등이 출연한다. 홀은 "1930년대를 그리는 '광부화가들'은 1980년대가 배경인 '빌리 엘리어트'의 할아버지뻘"이라며 "등장인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 공동체를 재발견한다는 점에서 같은 혈통"이라고 했다.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빌리 엘리어트'는 엔딩이 강렬하다. 어둠 속에서 헤드 랜턴을 켠 광부들이 빌리의 앞길을 비추며 지하갱도로 수직하강하는 장면이다. 홀은 "투쟁하는 인물들은 힘이 있다"면서 "꿈을 꾸는 게 중요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송작가로 출발한 그는 '빌리 엘리어트' '광부화가들'의 성공 이후 바빠졌다. 요즘엔 영국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담은 뮤지컬 극본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위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홀은 "방송극이나 시나리오와 달리 공연은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면서 "슬픔과 분노, 감동을 생리학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장르"라고 했다.

▶'광부화가들'은 5월 5~30일 명동예술극장. 1644-2003 '빌리 엘리어트'는 8월 13일부터 LG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