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도 쥐락펴락한 '녹음실의 독재자'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4.21 23:32

[클래식 ABC] 월터 레그와 英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음반 제작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는 남다른 감식안과 강한 추진력, 예민한 청각까지 겸비해야 하는 막중한 직책입니다. 20세기 팝 음악의 전설적인 프로듀서가 비틀스(The Beatles)와 일했던 조지 마틴(Martin)이라면, 클래식 음악의 간판 프로듀서는 단연 음반사 EMI의 월터 레그(Legge·1906~1979)입니다. 레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이었던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카라얀과 함께 일했지요.

레그가 두 거장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친(親)나치 전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들의 활동이 연합군에 의해 제약받자, 영국 프로듀서인 레그가 과감하게 이들을 끌어들인 것이지요. 레그는 이들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깎아내리는 교묘한 심리전까지 활용하면서 EMI의 주가를 올렸습니다.

20세기 전설의 클래식 음반 프로듀서로 음반 녹음을 위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만든 월터 레그. /EMI 제공
1952년 레그는 그리스 출신의 젊은 소프라노와 당장 계약하자고 EMI를 한참이나 닦달했습니다. 그 여가수가 훗날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로 꼽히게 되는 마리아 칼라스였지요. 레그는 지휘자나 연주자, 녹음 레퍼토리 선택에서 독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명(名)소프라노인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는 "민주주의는 예술에 치명적이다. 예술적 수준을 저하시키거나 혼돈을 초래하는 결과만을 낳기 때문"이라며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변호했습니다.

레그는 1945년 음반 녹음을 위해 직접 교향악단을 만들었습니다. 그 악단이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입니다. 당초 영국의 명지휘자 토머스 비첨을 영입했지만, 이듬해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떠나버리자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을 끌어들였습니다. 덕분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단숨에 정상급 악단으로 등극할 수 있었지요. 이 악단은 실황 연주도 했지만 주요 임무는 EMI를 위한 음반 녹음이었고, 덕분에 숱한 명반(名盤)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카라얀의 첫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 녹음 역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지요.

1960년대 이 악단은 한때 해산 위기를 겪었고,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로 개칭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실황 연주를 강화하고 단원이 운영에 참여하는 자치조직으로 탈바꿈하면서 1977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라는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왔지요. 리카르도 무티와 주세페 시노폴리,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 당대의 지휘자를 차례로 거친 뒤 2008년부터 핀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에사 페카 살로넨이 이끌고 있습니다. 음반 녹음이라는 탄생 배경부터 지극히 20세기적인 이 악단이 15년 만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지휘로 내한합니다. 이번엔 또 어떤 사운드를 들려줄까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5월 3~4일 서울 예술의전당, 6일 고양아람누리,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