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논리적이고 익살스러운 싸움을 봤나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4.14 23:58

[리뷰] 연극 '대학살의 신'

'대학살의 신(Le Dieu du Carnage)'은 대칭의 연극이다. 두 부부의 충돌로 속을 채운 이야기에는 수학적인 균형 감각이 있다. 가해자·피해자, 부부A·부부B, 공격·수비, 싸움·화해, 열탕·냉탕, 남·여 등으로 패를 가르고 그 긴장을 에너지 삼아 나아간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사이클이다. 이 싸움판의 언어는 매우 논리적이며 예측불허의 유머, 우스꽝스런 파격으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알렝(박지일)·아네트(서주희) 부부의 아들이 미셸(김세동)·베로니카(오지혜) 부부의 아들을 때려서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다.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 부모의 집 소파에 앉는 게 이 연극의 출발이다. 부모들의 설전(舌戰)은 아이들의 싸움처럼 직선적이지 않다. 하지만 꽃·파이·변기 등으로 서성이던 대화는 어느 순간 핵심으로 돌진한다. 위선이나 함정 같은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중요한 고비마다 변호사인 알렝의 전화벨이 울리며 긴장을 이완시킨다. 소송과 관련해 "여기서 실수하면 끝장이야" 같은 그의 대사들은 연극적 상황과 중첩돼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무대 뒤에는 종이봉투를 짓구겼다가 편 것 같은 큰 구조물이 서 있었다. 두 부부도 점점 엉망이 돼 간다. 아네트의 구토, 보드카 등이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헝클고 같은 편끼리도 균열이 생긴다. 미셸은 "부부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끔찍한 시련"이라고 하고, 베로니카는 급기야 "혼돈이 균형"이라고 선언한다. 젖은 책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는 장면과 마지막의 난장판도 재미있었다.

연극 '아트'로 유명한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쓴 '대학살의 신'은 지난해 토니상 연극부문 작품상 수상작이다. 한국 초연(연출 한태숙)은 끝이 어색했지만 네 배우의 앙상블로 격렬한 대결의 심리를 포착했다.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학생들의 단체관람도 예정돼 있다. 말이 재산인 정치인과 논술 준비생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세련된 코미디다.

▶5월 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