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녀 對 철부지… 오페라로 붙는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4.14 23:55

루치아
남편 죽인 뒤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 신영옥, 단골배역 맡아
마농 레스코
한 남자 잊지 못하는 사치스러운 여주인공… 세명이 번갈아 열연

다음 주는 '오페라 주간(週間)'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1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푸치니의 출세작 《마농 레스코》가 22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잇달아 막이 오른다. 원치 않는 결혼으로 광란에 빠져들어 남편을 살해하고 마는 비련의 주인공 루치아, 세속적 삶과 지순한 사랑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철부지 마농 레스코. 오페라는 두 여인의 대결이기도 하다.

루치아 vs 마농 레스코

19일 개막하는 국립오페라단의 《루치아》는 1993년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신영옥이 17년 만에 다시 고른 작품이다. 결혼 첫날밤 남편의 심장에 칼을 꽂은 뒤 하얀 나이트가운과 피 묻은 손으로 나타나 20여분 동안 비통한 심경을 토로하는 '광란의 아리아'로 유명하다.

푸치니의 오페라《마농 레스코》에서 남녀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은주(오른쪽)와 테너 최성수.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1998년 미국 디트로이트 오페라 극장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 더블캐스팅으로 이 역을 맡았고,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도 출연했던 신영옥의 단골 레퍼토리다. 신영옥은 인터뷰에서 "하도 많이 출연해서 악보가 낡아서 다 찢어질 정도"라며 웃었다. 그는 "이 작품만큼은 내가 신영옥이 아니라 루치아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래서 공연을 하고 나면 몸살이 나고 피 묻히는 장면은 종종 꿈에도 나온다. '다시는 안 해야지'라고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선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영옥은 "광란의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자칫 지루해지기도 쉽다. 단지 고음(高音)만이 아니라 잔잔하고 유려하게 노래를 끌고 가면서 모두 숨죽일 만큼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2일부터 서울시오페라단이 선보이는 《마농 레스코》 역시 푸치니뿐 아니라 오페라 《마농》을 쓴 마스네까지 숱한 작곡가들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방탕하고 사치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남자 주인공인 기사 데 그리외를 잊지 못하는 순정파 여인 마농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공연의 성패가 달려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소프라노 김향란(22일, 24일 낮), 김은주(23일, 25일), 박재연(24일 밤)이 번갈아 소화한다.

17년 만에 한국 무대에서 오페라《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선보이는 소프라노 신영옥. /국립오페라단 제공
단일 캐스팅 vs 트리플 캐스팅

올해 국립오페라단은 주역 가수들을 1명씩만 기용하고 공연 중간에 하루씩 쉬는 '단일 캐스팅'을 가동하고 있다. 이번 《루치아》 공연에서도 루치아 역의 신영옥 외에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 중인 테너 정호윤이 에드가르도 역을 맡고, 바리톤 우주호가 엔리코 역을 소화한다. 이 때문에 공연도 19일, 21일, 23일, 25일로 하루씩 건너뛰며 진행된다. 이소영 예술감독은 "관객이 어떤 날을 선택하든 수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른 기량을 선보여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반면 《마농 레스코》는 여주인공 역을 3명이 나눠서 맡는 트리플 캐스팅(triple casting)이다. 22~25일 매일 공연하며, 토요일인 24일에는 캐스팅을 바꿔가며 오후 3시와 오후 7시 반에 두 차례 공연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을 폭넓게 소개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칫 가수의 컨디션에 따라 기량 편차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립오페라단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19일·21일·23일·25일 예술의전당, (02)586-5282

▶서울시오페라단 《마농 레스코》, 22~25일 세종문화회관, (02)399-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