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르헤리치·서울시향 협연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4.11 23:09

악보 넘겨주는 '정마에'… 두 巨匠의 훈훈한 하모니

지난 9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피아노의 여제(女帝)'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협연 소식에 공연 전부터 관객들이 몰려들어 복도 한복판에 장사진을 이뤘다. 결국 음악회가 5분여 늦게 시작할 정도로, 공연 전부터 이상 열기를 보였다.

일말의 주저함도 찾을 수 없는 당당함이야말로 '아르헤리치 신화'의 출발점이다. 이날 협연 곡인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아르헤리치는 강약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유려한 손놀림으로 건반을 질주해갔다. 빠르기가 다소 자의적이라고 느낄 때조차, 관객들은 마취에 가까울 정도로 빠져들었다.

피아노 한 대 앞에 나란히 앉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연주한 마르타 아르헤리치(왼쪽)와 정명훈. / CMI 제공
사제(師弟)인 신수정 서울대 초빙교수와 조성진, 부부인 강충모와 이혜전, 아르헤리치의 후원을 받았던 임동혁 등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공연을 지켜봐 산 교육장이자 토론장이 됐다. 부부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남편 강충모는 "지나치게 자유롭다", 아내 이혜전은 "자유로워서 오히려 속 시원했다"고 말할 정도로 아르헤리치의 접근은 사뭇 논쟁적이었다. 하지만 아르헤리치는 연주의 다양한 길 가운데 그저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느껴질 만큼 강한 설득력을 선사한다.

협주곡 직후 휴식시간이 찾아오는 여느 연주회와는 달리, 이번엔 정명훈과 아르헤리치가 피아노 한 대 앞에 나란히 앉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가운데 세 곡을 선보였다. 정명훈이 지휘봉 대신 피아노 악보를 들고 나와 연주 도중에도 틈틈이 악보를 넘겨주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흔히 '포 핸즈(4 Hands)'로 불리는 흥겨운 이색 협연을 통해 3000여석에 이르는 대극장이 아늑한 실내악 무대로 순간 변하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2부에서 지휘자로 돌아온 정명훈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에서 명(名)지휘자 첼리비다케를 방불케 할 만큼 느린 속도로 다가가며 짙은 음영(陰影)을 부각시켰다. 곡이 지닌 감수성을 한껏 증폭시켰지만, 이달 서울시향의 숨가쁜 연주 일정 때문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악단의 집중력이 다소 흐트러진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