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4.09 10:40
플루티스트 최나경

‘플루트의 스타 플레이어’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장 피에르 랑팔부터 줄리어스 베이커와 페터-루카스 그라프, 막상스 라뤼, 오렐 니콜레 그리고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제임스 골웨이와 엠마누엘 파후드까지, 플루트 마니아나 전공자가 아닌 이상 보통의 음악 애호가들이 일반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이름들이다. 여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제프리 케이너나 샤론 베잘리의 존재도 떠오를지 모르겠다.
피아노나 현악기라면 연주자의 이름을 읊기에 몇 시간도 부족할 테지만, 금관 주자의 경우 현재 세계무대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보이는 독주자는 손에 겨우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 재삼 실감된다. 지난 2006년,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음악감독 파보 예르비)의 플루트 부수석으로 입단한 최나경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현재 신시내티 심포니의 유일한 한국 국적 단원이기도 한 최나경은 2008년에는 종신단원(Tenure) 자격을 받고 네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처음 적응하는 동안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참 넓고 넓은 음악의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행복함이 밀려오더군요. 오케스트라 해외 투어 때 혼자 비자를 따로 신청하는 것, 미국 공항에 내렸을 때 외국인 입국 심사 줄이 더 길다는 것 정도 외에 불편한 점은 없어요. 설령 국적을 바꾼다고 해도 나 자신이 미국인으로 생각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큽니다.”
스스로의 음악을 찾다
어린 시절, 우연히 손에 쥔 리코더가 그저 좋아 몇 시간이고 구성지게 ‘피리를 불어댄’ 최나경은 플루티스트가 되겠다는 바람만으로 부모님이 계신 대전을 떠나 홀로 예원학교에 진학한 당찬 초등학생이었다. 서울예고 1학년 시절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합격, 플루트계의 거장 줄리어스 베이커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던 유학 생활 동안에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플루트에 의지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커티스와 줄리어드 음악원을 거치는 동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주최 협주곡 콩쿠르를 비롯한 다수의 콩쿠르에서 도드라진 성적을 거두며 일찌감치 금관의 라이징 스타로 주목을 받았던 최나경이지만, 한때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이유 없는 오른손 마비 증상으로 막막한 암흑기를 거치기도 했다. 연주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웠을 이 시기를 꾹 참고 극복한 제자를 따뜻하게 지켜본 스승 베이커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경험은 결국 최나경이 ‘스스로의 음악’을 찾아나가는 법을 깨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후 줄리어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응시한 신시내티의 입단 오디션 4차까지 치러진 빡빡한 과정에서 180명이 넘는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 입성한 첫 한국인 관악 주자이자 최연소 단원의 탄생이었다. 매주 악단의 정기 연주회와 실내악 연주 틈틈이 독주자로서 일정 역시 쉬지 않고 있는 최나경은 인터뷰가 진행될 즈음에도 필라델피아에서 네 차례의 리사이틀을 마친 참이었다. 이 독주회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서도 기분 좋은 호평을 받았다.
“처음 신시내티 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 전까지 이런저런 연주 스케줄에 쫓기다보니 결국 시즌 시작 전날에야 악기와 짐가방 하나 들고 허겁지겁 도착했던 기억이 나요. 아는 사람도 집도 없었고, 신시내티에서는 필수인 자동차는커녕 운전면허증도 없어서 고생을 좀 했죠. 사실 처음엔 메이저 오케스트라 생활이 이렇게 바쁜 줄도 몰랐어요. 5일 내내 연주와 리허설이 있는 셈이고 이틀 이상 쉬는 날에는 항상 솔로 리사이틀이나 실내악 연주를 하는데, 뉴욕과 필라델피아, 유럽 혹은 한국 연주가 많아요. 어쩌다 쉬는 날이 있으면 동료들이 장난으로 ‘그럼 내일은 한국 가겠네?’ 하고 놀리는데 가끔 그게 사실이어서 다들 한바탕 웃곤 하죠.”
5년 전쯤이었을까? 유럽 리사이틀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눴던 최나경은 당시에도 또래의 다른 영재들 이상으로 성숙하고 속 깊은 면모가 인상적인, 믿음직한 아우라로 가득한 연주자였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모니와 밸런스를 만들어낼지 연구하고 화합하는 과정이 참 맘에 든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연주할 때면 화합된 ‘플라리넷’의 소리, 그리고 플루트와 오보에가 같이 나온다면 ‘플로보’의 소리로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처럼… ”이라며 음악과 플루트에 대해 조곤조곤 풀어내는 행간마다 전해지던 것은 음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었다. ‘나’가 아닌 ‘음악’을 먼저 생각하던 최나경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매력은 크게 전체 음악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 안에서 나 자신이 계속해서 음악적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는 데 있죠. 물론 플루트 솔로 파트의 연주도 너무 좋지만, 다 함께 전체 음악의 흐름과 하모니, 수많은 다른 악기들의 색깔을 들어가며 연주하는 것은 정말 또 다른 흥미로운 세계입니다. 목관이 섬세하게 서로의 하모니를 맞추는 것, 플루트가 현악의 멜로디에 컬러를 더해주는 것, 더블베이스나 튜바의 저음에 맞추어 음정 잡기, 지휘자가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해석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협연자의 모든 것을 잘 맞추며 서포트하는 작업….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스릴 넘치고 생동감 있는 작업은 없는 것 같아요. 100여 명의 음악인들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 한두 명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음악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니까요.”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친절한 단원들과의 연주는 매번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언제나 빡빡한 일정의 오케스트라 생활에서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악단 분위기는 언제나 힘이 되어준다.
“리허설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참 많아요. 어느 날엔가는 누군가 제2 바이올린 여자 단원의 교향곡 악보 맨 마지막 페이지에다 예전 그 단원을 쫓아다니던 스토커 단원의 사진을 붙여놓는 장난을 쳤어요. 마지막 페이지가 왔을 때 모두들 너무 웃겨서 자동적으로 활짝 웃으며 연주를 하게 되니 오히려 좋더라고요. 한번은 브루크너 교향곡 2악장 연주 도중이었는데, 클라리넷 수석이 중간 페이지를 사물함에 두고 온 걸 그제야 깨달았죠. 할 수 없이 연주 중간에 슬그머니 나가 악보를 가지고 들어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연주했는데, 연주 뒤 모든 단원이 기절할 정도로 한바탕 웃었죠.”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로서 느끼는 기쁨 중 하나는 바로 걸출한 협연자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2001년 부임 이래 신시내티의 사운드를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음악감독 예르비가 2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신시내티를 떠난다는 결정에 단원들의 아쉬움은 크다.
“예르비의 음악에서는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이 나요. 음악성과 성품을 겸비한 분이기도 하죠. 음악감독의 위치에 있지만 항상 겸손하고 사려 깊으면서도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음악을 정말 생동감 있게, 계속 더 듣고 싶게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단원들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더 많이 기대하고 격려해주니 모두가 힘이 나죠. 재작년에 예르비 지휘로 신시내티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는데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신시내티와 예르비의 음반은 이번에 텔락 레이블에서 나온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그리고 홀스트의 '행성'을 강력히 추천해드려요! 이전 레코딩 중에는 라벨,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가 정말 최고죠. 매주 라두 루푸나 머레이 페라이어, 조너선 비스, 랑랑, 힐러리한, 야니네 얀센, 고티에 카퓌송처럼 다양한 세계 정상의 솔리스트들과 함께 연주하다보니 배우는 점이 정말 많아요.”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