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출발한 현대사회의 블랙코미디

  • 성남문화재단
  • 글=최윤우(월간 '한국연극' 편집장)

입력 : 2010.04.09 10:29

연극 '대학살의 신'

야스미나 레자의 '대학살의 신(God of Carnage)'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으로 공연된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하고 연출가 한태숙, 박지일, 김세동, 서주희, 오지혜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한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야스미나 레자 특유의 재치와 위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는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작가다. 200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장기 공연되고 있는 '아트'를 비롯해 2008년 초연돼 독특한 극중극 형식을 선보였던 '스페인 연극' 등 그간 선보인 그의 작품은 ‘웰메이드’ 희곡의 전형으로서 국내 관객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2009년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연출상?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이력을 차치하고라도 '대학살의 신'을 기대케 하는 충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야스미나 레자는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 속에서 삶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엿보게 하는 작가다. 특히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 간의 이해와 소통의 부족, 그로 인한 고독의 문제를 통해 현대사회 속에서 맞닥뜨리는 개인의 소외와 고독을 표현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대학살의 신'도 야스미나 레자가 견지하고 있는 관찰법, 즉 우리의 삶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법한 사건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열한 살 아이들의 싸움을 두고 이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의논하려 모인 두 부부가 있다. 이들의 싸움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부모들이 아이들의 파괴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점잖은 대화로 시작하지만, 이내 여자를 싫어하는 사람,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등 다양하고 유치한 논쟁으로 변질된다. 결국 고상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아이들 문제를 합의하려 했던 두 부모의 대화는 논쟁을 거듭하면서 점차 과격화되며 유치한 설전과 함께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대학살의 신'은 이처럼 분별력 있어 보이는 4명의 어른이 순수한 의도로 모였지만 돌연 끔찍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이 감추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본성, 즉 인간이 지닌 폭력적이고 유치한 근성을 꿰뚫고 있다. 즉, 아이들의 싸움이라는 단순한 사건이 인간의 허례 의식에 의해 사회와 문화는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절까지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여기에 대기업의 무정함, 휴대전화에 중독된 사람들, 툭하면 소송하는 문화, 인간의 허영과 위선 등을 작가 특유의 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비틀고 있는 작품이다.

유치한 논쟁의 정점은 늘 히스테리와 광기를 동반한다. 서로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논쟁이 가져오는 신랄함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흥미진진함, 이를 담아내기 위한 배우들의 파워풀한 연기 등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낸 '대학살의 신'은 현대사회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랄 수 있는 소통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우리 시대의 블랙코미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