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같던 연주, 말년엔 산들바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3.29 23:20

[클래식 ABC]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호로비츠씨, 당신도 나이 먹는 게 두렵습니까?"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명(名)피아니스트로 꼽혔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Horowitz·1903~1989)에게 전기작가 데이비드 듀발이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호로비츠가 타계하기 2년 전인 1987년의 인터뷰였습니다. 84세 노장의 답변은 간결하면서도 솔직했습니다.

"물론이라네. 무용수만이 아니라 비르투오소(virtuoso·연주력이 뛰어난 대가) 역시 힘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늙고 추해졌어."

1986년 독일 베를린 콘서트 당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소니 클래시컬 제공
젊은 시절 그가 건반 위에서 보여줬던 폭발적인 에너지와 흠잡을 곳이 없는 기교를 생각하면 무척 가슴 아픈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호로비츠는 러시아의 부유한 유대인 기술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졸지에 전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호로비츠는 "간절히 작곡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갑자기 돈을 벌어야 했다"고 회고합니다. 하지만 1925년 독일 베를린에 이어 1928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면서 호로비츠는 일약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3악장에 이르자 호로비츠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침없이 달려나갔습니다. 다음날 평론가들은 일제히 "회오리 같았다"고 격찬합니다.

일찍이 스타덤에 올랐지만, 호로비츠의 삶과 음악에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1936년과 1953년, 1969년과 1983년 등 여러 차례 무대에서 은퇴했고, 그중 1953년의 무대 은퇴는 무려 12년이나 계속됐습니다. 호로비츠는 인터뷰에서 "연주자의 비극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 최선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가!"라며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말년의 호로비츠는 청년 시절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올 정도로 강력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를 자랑했던 그가 스카를라티와 쇼팽·슈만의 소품들을 너무나 꾸밈없이 소박하고 따뜻하게 들려준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타계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든의 노장이 연주했던 실황들은 지금도 속속 음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1987년 독일 함부르크 실황이 2008년 출시된 데 이어, 올해는 1986년 베를린 콘서트가 음반으로 나왔습니다.

호로비츠는 타계 나흘 전까지도 녹음을 위해 건반 앞에 앉았으니 연주는 그의 천직(天職)이었던 셈입니다.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순회공연을 갖는 도시로 수송할 만큼 까다로웠고 "예술가에게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렇기에 최종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만큼 고집스러웠던 호로비츠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팬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