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콘서트] 산골 아이들, 기타선율 타고 스페인으로 남미로…

  • 경북 영양=곽아람 기자

입력 : 2010.03.26 02:43 | 수정 : 2010.03.26 07:52

영양郡 청북·청기분교 학생들, 서울에서 온 '음악선물'에 흠뻑

"아, 저 노래 뭐지? 어디서 들어본 건데."

"쉿, 조용히 해. 음악 시작됐잖아."

때아닌 눈이 펑펑 쏟아진 25일 오후 3시, 경북 영양군 청기면 당리 일월초등학교 청북분교장은 자그마한 음악회장으로 변했다. 일월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가장 가까운 읍내까지 자동차로 25분이 걸리고, 버스가 하루 3번만 다니는 곳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5~10㎞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한다. 이런 오지의 학교에 기타리스트 안형수씨와 오카리나·팬플룻 전문 연주단체 '모노 앙상블'의 홍광일·서혜진씨가 학생들에게 자그마한 '음악선물'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찾아왔다.

방과후 빈 교실에 청북분교 2·4·6학년 학생 12명과 인근 청기분교 1·3·5학년 학생 13명, 청북분교 부속유치원생 3명이 선생님들과 함께 옹기종기 앉았다. 청북분교는 짝수 학년만, 청기분교는 홀수 학년만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번갈아 학교를 옮긴다. 이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운동장으로는 하얀 눈발이 날렸고, 교실 안에서는 난로 불이 활활 타올랐다.

산골 학교의 교실이 근사한 음악회장으로 변신했다. 25일 경북 영양군 일월초등학교 청북분교와 청기분교 학생 등 30여명이 기타리스트 안형수씨의 연주에 귀를 쫑긋 세웠다. 조선일보가 올 한 해 우리 일상 속에 음악을 심기 위해 벌이고 있는‘우리 동네 콘서트’의 무대였다. / 경북 영양=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음악회의 문은 '기타와 세계 음악여행'을 주제로 안형수씨가 먼저 열었다. 안씨가 이흥렬의 '섬집아기',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안단테', 스페인 작곡가 알베니스의 '전설', 우르과이 작곡가 로드리게스의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김광진의 '마법의 성' 등을 연주하는 동안 아이들은 감미로운 기타 선율을 타고 이탈리아로, 스페인으로,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1학년 여민이는 '섬집아기'가 흘러나오자 눈을 반짝거리며 안씨의 손놀림에 주의를 기울였다. 여민이는 "교회에서 기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탱고음악인 '라 쿰파르시타'가 경쾌하게 울려퍼지자 강박에 맞춰 고개를 숙였다 들고, 어깨를 들썩거리던 3학년 성준이는 "기타가 갑자기 '팡!' 하는 소리를 내자 깜짝 놀라고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어 '모노 앙상블'이 동요 '네잎 클로버'와 '솜사탕', 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 주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등의 주제가를 경쾌하게 들려주며 아이들을 신나는 음악세상으로 인도하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홍광일씨가 "오카리나의 모양이 뭘 닮았냐"고 묻자 "헤어드라이어를 닮았다"고 대답해 웃음보가 터졌다. "오카리나는 원래 아기 거위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홍씨의 설명에 아이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즈니 만화영화 주제곡인 '미키마우스 행진곡'의 팬플룻 연주가 끝난 후 홍씨가 "팬플룻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신(牧神) 팬(Pan)이 갈대로 변해버린 요정을 그리워하며 만든 악기"라고 설명하자 아이들은 신기한 듯 홍씨의 팬플룻을 바라봤다. 3학년 연주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룬 만화영화에서 요정을 짝사랑하던 목신 팬의 이야기를 본 적 있다"면서 "악기를 직접 보니까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날 음악회는 조선일보서울시향이 클래식을 일상에 심기 위해 마련한 우리 동네 콘서트의 현장이었다. 올해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과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오지 초등학교 분교를 찾아가서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이기도 했다. 청북분교 4학년 담임인 오창석 교사는 "문화적 혜택을 받기 힘든 벽지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