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음악의 불같은 매력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3.24 23:25

첼리스트 케라스·피아니스트 타로 이중주

첼로의 활은 못내 아쉬운 듯 현(絃)을 떠났고,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추던 10개의 손가락도 허공으로 가볍게 솟아올랐다. 음악은 끝났지만,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남겨놓은 잔향(殘響)은 여전히 넉넉하게 객석을 맴돌고 있었다. 프랑스의 작품을 프랑스의 연주자들이 들려준 프랑스 음악의 밤은 이렇듯 청각적 호사(豪奢)로 다가왔다. 23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와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이중주였다.

시계를 100년 전의 프랑스로 돌려놓은 듯, 1부에서는 프랑시스 풀랑크(Poulenc)와 클로드 드뷔시(Debussy), 앙리 뒤티외(Dutilleux)의 20세기 작품들을 차례로 훑어갔다. 첫 곡인 풀랑크의 '세레나데'에서 두 연주자의 호흡은 차분하게 정돈되지 못했고, 이따금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프랑스 음악만 모아서 들려준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왼쪽)와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 /LG아트센터 제공
하지만 같은 작곡가의 '프랑스 모음곡'에서는 바로크 춤곡의 고풍(古風)스러운 기품과 멋을 한껏 살렸다. 고음역(高音域)에서 첼로가 가끔 정확한 음정을 찾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군중 사이에서 우아하게 추는 이인무(二人舞)처럼 두 연주자는 자유롭게 곡과 곡 사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이날 연주는 프랑스 음악이 고전적인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적인 현대음악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는 자리이기도 했다. 드뷔시의 말년작인 첼로 소나타에서 이들은 다채로운 음색과 급작스러운 강세 변화를 통해 그동안 잊고 있던 프랑스 음악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2부에서 피아니스트 타로가 독주(獨奏)로 들려준 프랑수아 쿠프랭(Couperin)의 모음곡은 이중주 사이에 끼워 넣은 '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선물'이었다. '흔들리는 그림자'는 인상주의적으로 채색했고, '틱 톡 촉(Le Tic-Toc-Choc)'은 마치 소리를 정지화면으로 붙잡아놓은 듯했다. 곡이 끝날 때마다 날렵하면서도 매끈한 끝선 처리를 통해서, 이들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이야말로 프랑스 음악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걸환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