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불협화음'] 손자·손녀 손 잡고 '80살 조승우'를 보러갈 수 있을까

  • 작곡가 이지혜

입력 : 2010.03.17 23:49

뮤지컬 '소야곡'

작곡가 이지혜
아들은 10대 소녀인 새엄마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는 옛 애인과 바람을 피우니 설정만 보면 '막장 드라마'다. 그럼에도 《A little night music(소야곡·小夜曲)》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내가 작곡가 손드하임의 뮤지컬 중 가장 어여삐 여기는 이 작품의 리바이벌이 브로드웨이에 떴다니 뉴욕까지 가서 이를 놓칠 쏘냐. 나의 뮤지컬 관람사상 가장 비싼 돈(120불!)을 기꺼이 지불하고 표를 샀다.

극장에 들어서니 나이 지긋한 관객들이 많았는데 36년 만에 리바이벌되는 이 작품에 대한 그들의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야곡》에는 현재 'FM 골든 디스크 김기덕입니다' 시그널로도 쓰이고 있으며 손드하임의 곡 중 가장 잘 알려진 멜로디인 〈Send in the clowns(광대들을 들여요)〉가 나온다. "대단하네, 우린 커플인가요?/ 난 마침내 마음을 잡았는데 당신은 붕 떠 있고/ 조롱받을 만하네요." 중년 여배우를 연기하는 캐서린 제타 존스가 옛 애인에게 부른다는 설정인데 노래 실력은 살짝 아쉬웠지만 다 용서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정말 너무나 예뻤고 연기력 또한 활달하여 스타의 존재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수긍이 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공연의 백미(白眉)는 올해 85세인 안젤라 랜즈베리였다. 흔히 TV 시리즈물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아줌마 탐정으로 기억되는 배우지만 뮤지컬계에선 다섯 번의 토니 수상자이자 오리지널 《스위니 토드》의 미세스 러빗으로 유명하다. 극장 명예의전당에 올라가 있는 그녀는 서릿발처럼 짱짱하고 능청스러워 마치 할머니 분장의 젊은 배우를 보는 듯했다.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한마디로도 자석처럼 신경을 끌어당기는 연기력에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이해되었고, 이 훌륭한 배우가 무대에서 열연할 기회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뮤지컬《소야곡》의 캐서린 제타 존스(오른쪽)와 안젤라 랜즈베리. /보노 브라운 컴퍼니 제공
그리고 우리나라 뮤지컬계를 생각했다. 40년쯤 후에도 조승우·홍광호·김선영 같은 배우들이 무대를 빛내고 있으면 좋겠다고. 그때쯤이면 우리 극장에도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데리고 40년 전 열광했던 조승우를 다시 만나기 위해 찾아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