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발레? 처음엔 집안 발칵" '훈남' 발레리노 형제

  • 김은정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년)

입력 : 2010.03.14 13:19

영화 ‘백야(White Nights·1985)’에는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Baryshnikov)가 11바퀴의 ‘삐루엣(Pirouette·한 다리 회전)’을 하는 명장면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5~16바퀴도 삐루엣도 거뜬히 해내 ‘팽이형제’로 불리는 발레리노 형제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3학년에 나란히 재학 중인 김기완(21)·기민(18) 형제다. 동생 기민씨가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한예종에 영재로 입학하면서 세 살 차이 나는 형과 대학동기가 됐다.

동생 김기민(왼쪽), 형 김기완씨
형제 모두 발레계의 ‘주목받는 신예’다. 기완씨는 지난 해 ‘신인무용콩쿨’에서 대상을 탔고, 동생 기민씨는 발레계의 올림픽으로 통하는 ‘모스크바 콩쿨’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 형제의 지도교수인 한예종 무용원의 김선희 교수는 이들 형제가 “한국 발레를 세계의 선두그룹으로 진출시킬 꿈나무들”이라고 말했다.

한 집에서 나고 자란 형제지만 특징은 다르다. 형은 188cm의 큰 키에 왕자의 자태가 흐르는 마스크를 가진 ‘미소년과’다. 동생은 “작년 쿠바공연을 함께 갔을 때 저한테 사인 받으러 온 팬들이 잘생긴 형을 보고서 그쪽으로 가버려 속상했다”고 했다. 181cm의 장신인 동생은 팔다리가 길어 동작이 우아하고, 나이에 비해 구사하기 힘든 고난이도 기술을 소화한다는 평을 받고있다. 발레계의 재목으로 인정받아 지난해 김연아, 장미란 선수에 이어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부터 ‘자랑스런 청소년 대상’을 받기도 했다.

처음엔 두 아들이 발레를 한다고 나섰을때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어머니 서난현(46·작곡가)씨는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공무원인 아버지 김선호(50)씨는 노발대발했다. 서씨는 “남편이 일주일 동안 말도 안 걸만큼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이제는 4년째 자녀들의 팬카페 운영자를 자처하고 있을만큼 열렬한 팬이 됐다. 이제는 서씨가 “제발 좀 나서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을 정도다.

발레리노가 흔치 않은만큼 형제는 서로 의지하며 꿋꿋이 버텨나갔다. 서로의 동작을 모니터 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동경하는 무용수의 영상을 함께 보며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등하교를 함께 하면서 서로의 꿈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함께 영어공부를 하며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기도 한다. 형 기완씨는 “부모님과는 못 하는 얘기도 기민이와는 자연스럽게 한다”며 “서로 잘 하는 기술이 달라 많이 배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두 형제와 학창시절 함께 호흡을 맞춰 온 발레리나 박세은(21·국립발레단)씨는 “연습으로 지친 동생을 웃게 하려 형이 뽀뽀세례를 퍼부은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형 기완씨는 연습도중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기민씨가 ‘백조의 호수’ 전막 주역으로 최연소 프로 데뷔를 하는 날이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병원을 찾은 기민씨는 병상에 누운 형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발에 깁스를 한 채 재활치료 중인 형을 위해 기민씨는 틈틈이 마사지도 해 주고 심부름도 도맡아 하고 있다.

형제는 척박한 한국 발레계에서 세계 무대를 목표로 기량을 쌓아가고 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마뉴엘 레그리(Manuel Legris)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의 줄리오 보카(Julio Bocca)처럼 파워풀한 춤을 추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 이들 형제의 꿈이다.

기민씨는 “외국에선 발레가 대중 예술로 인기를 얻는 것이 너무 부럽다”며 “앞으로 국민들이 발레에 관심을 가지도록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