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 쇼팽을 이야기하다

  • 성남문화재단
  • 글=손열음
  • 진행=남소연 편집장

입력 : 2010.03.11 13:47

쇼팽이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쇼팽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쇼팽에 빠질 때가 있지 않나 싶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쇼팽의 심미안이야말로 예술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나는 기본적으로 음악이란 무엇보다도 아름다워야 하고, 낭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꽃밭이고 청춘 로맨스여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추함이라도 절대적인 가치의 아름다움을 가져야 하고 건조한 일상을 묘사한 내용이더라도 결론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라면 쇼팽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이룩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른 작곡가들과 차별화되는 쇼팽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음악사적으로 쇼팽은 너무 독자적이어서 사조를 구분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데, 그의 가장 차별화된 점은 희로애락 중에서도 특별히 ‘슬픈’ 감정을 이전에는 없이 세세하게 토로해낸 점이 아닌가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쇼팽을 연주하고 나면 마치 내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울었고, 내 것이 아닌 비극에 대해 애도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자신들의 인생의 비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마치 슬픈 영화를 굳이 돈 주고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심리처럼. 그런데 쇼팽의 위대한 점은 그러면서도 그렇고 그런 신파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화성학과 악기의 사용법, 리드믹 센스 등은 이전에는 전혀 없던 파격이었다. 그리고 쇼팽 자신은 그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또한 쇼팽의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다. 베토벤이 인생을 통해 세상의 불합리에 맞서 싸우고 음악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소망했다면 쇼팽의 음악은 좀 더 다사다난한 개인사에 가깝다. 만 명을 설득하는 것의 키워드는 한 명을 제대로 설득하는 것, 가장 좋은 예로 쇼팽을 들 수 있지 않나 싶다.

쇼팽의 매력을 결정적으로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건 아주 어렸을 때 쇼팽 에튀드를 처음으로 배우면서 받았던 쇼팽에 대한 첫인상이다. ‘특이한, 그런데 무척 솔직한’ 음악이라는 게 첫 느낌이었다. 고전음악이란 감상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내용 못지않게 구조나 형식이 중요하고 또 많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쇼팽은 누구보다도 내용 자체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 점이 또한 쇼팽의 음악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가지는 이유가 아닐까.

손열음의 스페셜리스트는?

너무 많지만, 다른 작곡가보다도 쇼팽을 연주할 때 제일 빛나는 사람은 단연 이그나츠 프리드만(Ignaz Friedman, 1882~1948)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더 부합하는 쇼팽은 상송 프랑수아(Samson Francois, 1924~1970)이고, 알프레드 코르토의 몇몇 작품들-전주곡이나 발라드-은 자주 손이 가는 건 아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충격적이다. 그 외에도 폴란드의 할리나-체르니 스테판스카(Halina-Czerny Stefanska, 1922~2001)나 푸총(Fou Ts’ong) 모두 매우 훌륭하다. 요즘의 젊은 연주자 중에서는 내 친구이기도 한 사첸(Sa Chen)의 쇼팽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우수 어리면서도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는데, 다른 작곡가들보다도 쇼팽에 특별히 강세를 보이는 것 같다.

가장 아끼는 쇼팽 음반을 뽑는다면?

앞서 말한 사람 중에서도 내게 진짜 최고는 프랑수아의 마주르카 음반이다. 이건 일단 틀어놓고 다른 일 하려다가도 결국 하늘만 보고 듣게 되더라(웃음). 사실 프랑수아는 평소 내 이상향과 별로 일치하지 않는 타입의 음악가인데, 유독 쇼팽만 특별하게 예외인 사실이 재미있다. 프랑수아의 쇼팽은 듣는 사람의 감정을 끝없이 고양시키는 마술이 있다. 그리고 그 센슈얼리티야말로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내용이다.

데뷔 음반과 두 번째 음반을 모두 쇼팽으로 만들었다. 만약 쇼팽으로 자유롭게 한 장을 더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꾸미고 싶은가?

우선은 왈츠 전곡! 쇼팽의 고고한 영혼을 가장 알맞게 표현한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일단은 예뻐서 좋고, 감정의 원단들을 다른 작품들처럼 세세하게 풀어나가기 보다는 우아함으로 한껏 포장한 점이 마음이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세트다.
쇼팽 하이라이트로 여러 작품을 다양하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약간 식상한 면이 없진 않을 듯하고…. 아마 이런 콘셉트는 시중에 발매된 피아노 음반 중 가장 많지 않을까.
좀 독특하게 쇼팽의 작품과 그와 관련된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합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왈츠/에튀드 원곡과 고도프스키의 편곡 작품, 쇼팽의 C단조 프렐류드와 라흐마니노프의 변주곡, E장조 프렐류드와 몸포우의 변주곡, 혹은 슈만이 '카니발, Op.9'에서 묘사한 쇼팽, 또는 쇼팽이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서로 손을 잡고’ 변주곡과, 같은 곡에서 리스트가 영감을 받아서 쓴 ‘돈 조반니의 회상’에 이르기까지, 소스를 찾자면 아주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건 음반보다도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더 적절할까?(웃음)

지금 아이팟에 담아둔 쇼팽은?

음악만 130기가를 넣어두었다. 아마 쇼팽도 적진 않을 것 같은데....(웃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