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3.11 11:29
난형난제의 형제, 15년 만에 형제로 만나다
배우란 타고 나는 것일까.
같은 질문에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 동생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 뮤지컬계를 이끌어온 형제 배우 남경읍 남경주. 둘을 가리켜 연출가 한진섭 감독은 "경주는 타고났고 경읍이는 자기가 만들었다"고 평한다. 형제가 연극 '레인맨' 무대에 함께 선다. 극중에서도 남경읍이 형 레이먼 역을, 남경주가 동생 찰리 역을 맡았다. 둘이 한 무대에 같이 서는 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1996)' 이후 15년만이다. 18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른 '레인맨'의 두 배우를 만났다.
▶당신의 '레인맨'은 누구인가요
레이먼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자폐이면서 천재다. 찰리는 레이먼을 이용해 아버지의 유산을 빼돌리려 한다. 사업가라기 보다 사기꾼이다. 찰리는 요양원에 있던 레이먼을 '유괴'하다시피 해서 자신의 차에 태운다. 이제부터 형제의 여정이 시작된다. 레이먼을 정신병자 취급하던 찰리는 그 며칠의 시간 동안 차츰 '피'가 당겨옴을 느낀다.
제목 '레인맨'은 찰리가 어린 시절 상상 속의 친구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찰리는 극중 대사에서 "어릴 때 두려움을 느끼면 레인맨이 다가와 노래를 해줬어. 내 상상 속의 친구였지"라고 되뇌인다.
남경주도 "나의 '레인맨'은 항상 우리 형이었다"고 말한다. "형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뮤지컬 배우로 살 수 있었을까. 85년 시립가무단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절 '판타스틱스'의 주인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형 덕분이었다. 힘들 때마다 내 옆엔 형이 있었다. 형이 있어 참 다행이다."
▶경읍경주 난형난제
형제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시립가무단, 서울예술단까지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을 함께 걸었다.
형제가 함께 연기자니 그 오랜 세월 비교도 많이 당했을 법하다. 하지만, 연기라는 건 객관적 수치화가 불가능한 영역. 차라리 다른 분야라면 비교가 쉽다. 당구는 형이 가르쳤지만 동생이 앞질렀다. 술은 형이 잘 마신다. 담배는 형이 더 많이 피운다. 동생은 끊었다. 피아노는 형이 월등히 잘 친다.
"교육자로서의 성품, 인내심이나 지구력에선 형이 나보다 월등하다. 나는 성격이 다혈질이고, 뭐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게 없으니."
통장 잔고는 누가 더 많을까. "당연히 동생이 많겠지"라는 형의 말에 손사레를 치며 강하게 부정하는 동생. "나 요즘 완전히 바닥이야. 돈이 없으면 불안해진다는 찰리의 대사가 딱 지금 내 심정이라니까."
▶성공하는 배우의 조건, 집요함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배우는 타고나는 것일까. 남경주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노력하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형은 반대다. "27년간 연기 지망생을 가르쳐왔는데 후천적인 것도 있지만 타고나는 것도 필요하더라"고 말한다.
남경읍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무대 위에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 중 누가 더 집요할까. 남경주는 "내가 더 바깥으로 표출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실제 안을 뜯어보면 형도 만만치 않다"며 "가령, 나는 1시간만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도 좀이 쑤시지만 형은 하루 22시간까지 피아노를 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남경읍은 지난 2008년 자신의 뮤지컬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평생 소원이었던 클래식 연주를 위해 피나는 피아노 연습을 했다. 하루 평균 17시간씩 6개월 동안 모차르트 545번 한 곡을 1만번 친 것이다.
30여년 집요하게 연기 한 우물을 파 온 두 배우의 열정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공연은 다음달 28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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