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미술토크] 파리의 패션을 좋아했던 화가

  • 글·컨텐츠·사진 제공_서정욱

입력 : 2010.03.03 17:06

르누아르

파리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도시이죠.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개선문, 오르세 미술관 등 유명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서울의 1/6 정도인 생각보다 작은 도시이지만, 문화·예술에 관한 세계 최고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파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패션입니다. 시즌 전 세계 패션의 유행을 주도하는 '4대 컬렉션'

현재는 뉴욕 컬렉션을 시작으로 런던, 밀라노, 파리의 순서로 개최되는데요. 그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파리 컬렉션'은 일 년에 두 번 열립니다. 그리고 그 시초는 1863년 오트쿠튀르 입니다. 파리에 패션의 유행이 시작되었던 때이지요.

그런데 그때의 파리패션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한 화가가 있습니다. 패션을 좋아했고 또한 즐겁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했던 그는 섬세한 붓 터치로 19세기 오트쿠튀르의 아름다운 장인 드레스에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바로 르누아르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 상류층 여인들을 시작으로 패션의 유행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계절에 따라 새로운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싶어 하게 된 거죠. 그 중심에는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왕실의 디자이너였던 찰스 프레드릭 워스는 매 시즌 자신의 샵에서 새로운 의상을 직원들에게 입히고 귀부인들을 초청해 쇼를 하게 됩니다. 최초의 패션쇼가 시작 된 거죠.

그때의 최고의 유행은 버슬 스타일이었습니다. 코르셋을 이용해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고 버슬로 풍성한 볼륨을 만드는 것입니다. 양산과 접는 부채는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패션잡지들이 하나 둘 창간되기 시작하고 백화점이 문을 엽니다.

르누아르의 샤르팡티에 부인의 초상입니다.

그 이전 귀부인들의 의상은 장중한 정장에 딱딱한 격식이 있었는데 르누아르의 초상들은 세련된 드레스와 액세서리로 치장한 귀부인들을 매우 생동감 있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 했습니다. 샤르팡티에 부인은 이 그림에 크게 만족해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르누아르를 소개하게 됩니다.

샤르팡티에 부인은 당시 사교계의 잘 알려진 명사였습니다. 그녀에게 소개 받은 많은 부유층 귀부인들은 오트쿠튀르의 새로운 의상을 입고 르누아르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게 됩니다. 르누아르는 그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르누아르는 서민들의 패션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파리에는 서민들이 2달러 정도의 입장료로 부담 없이 놀 수 있는 무도회가 있었는데 물랭 드라 갈레트입니다.

르누아르는 정오가 넘으면 자주 물랭 드라 갈레트에 가서 한껏 치장을 하고 흥겹게 춤을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경쾌한 음악과 생기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패션을 좋아했던 르누아르는 그 드레스의 느낌들을 살아 있는 듯 표현했고 춤에 한껏 빠진 여인들의 모습은 드레스와 함께 매력적인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물랭 드라 갈레트의 무도회입니다.

다른 유명한 화가들도 자주 물랭 드라 갈레트에 왔었군요.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 드라 갈레트, 반고흐의 물랭 드라 갈레트입니다.

르누아르의 작업실은 물랭 드라 갈레트에서 5분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그의 작업실 정원에서 무도회에 가기 전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네입니다.

르누아르는 점점이 일렁이는 햇살을 그려 입체감과 질감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도 합니다. 르누아르는 패션 뿐 만이 아니라 모든 그시대의 문화를 사랑했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해하고 긍정했던 화가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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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 갤러리 대표 서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