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지 않았다 나지막이 읊조릴 뿐

  • 베이징=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2.28 23:24

巨匠의 담대한 쇼팽… 백건우, 차이나필하모닉과 협연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서쪽의 중산공원(中山公園)에 자리 잡은 중산공원음악당. 빈 필하모닉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 등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이 차례로 다녀간 이곳에 이번에는 한국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협연자로 초청받았다. 올해 폴란드 작곡가 쇼팽(1810~1849)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차이나 필하모닉과 중산공원음악당이 '완전(完全) 쇼팽'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열고 있는 쇼팽 집중조명 시리즈 가운데 개막 연주회의 협연자로 나선 것이다. 이날 연주회는 중국중앙방송(CCTV)이 중계에 나섰고 중국 팬들과 음악계 인사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백건우가 차이나 필하모닉(지휘 야첵 카스프지크)과 협연한 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스트라빈스키가 편곡한 쇼팽의 녹턴에 이어, 흰색 터틀넥과 검은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선 백건우는 때로는 강건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쇼팽의 초상을 그렸다. 거대하고 탄탄한 스케일을 갖추고 있어 그의 건반은 지나치게 과도한 애상(哀傷)에 휩쓸리는 법이 없었다. 청춘 피아니스트들이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울부짖는 쇼팽에 가깝다면, 백건우의 쇼팽은 나지막이 읊조리는 사색적인 멋이 깃들어 있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차이나 필하모닉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다./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공

백건우는 차이나 필하모닉과 광저우 심포니를 동시에 이끌면서 '중국의 카라얀'으로 불리고 있는 지휘자 위룽(余隆)의 초청으로 매년 중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 광저우에서 8차례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해서 화제를 모았다. 중국 중앙음악학원 우잉(吳迎) 피아노과 학과장은 "현재 중국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피아노를 배우며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고 있다. 따뜻한 감성이 내면에서 흐르면서도 뛰어난 톤을 갖춘 백건우는 좋은 표본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을 지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위룽의 부인인 쉬웨이링(徐惟聆)은 "백건우는 단순한 피아니스트 이상의 존재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백건우의 음반을 들고와서 사인을 청한 애호가 저우하오(周皓)는 "백건우는 광활하고 웅혼한 음악혼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올해 중국에서 '쇼팽 전령사'로 나선 백건우는 이달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잇달아 쇼팽을 협연한 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차이나 필하모닉의 협연자로 5월 다시 쇼팽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