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성악가는 이렇게 나이 들어야 한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2.22 03:14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 내한공연
기교보다 기품 넘치는 무대… 호흡은 부쳐도 여운은 길어

지난 19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린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54)의 내한공연.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가 먼저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정작 성악가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잠시 후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시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가운데 이중창 〈여기를 봐, 나의 자매여〉의 전주(前奏)가 울리자, 보니는 메조소프라노 피오나 캠벨과 손을 맞잡고 경쾌하게 무대 위로 등장했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손을 맞잡고 퇴장하는 대목까지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설정에 객석에서는 다시 갈채가 이어졌다.

보니는 1980년대부터 《피가로의 결혼》 가운데 수잔나, 《마술피리》의 파미나 등 모차르트 오페라의 단골 주역을 맡으며 서정적 소프라노(lyric soprano)의 최고봉으로 꼽혔다. 청중을 단숨에 휘감아버리는 마법 같은 기교 대신, 매끄러운 윤기와 기품이 그의 '숨은 무기'다. 이날 1부에서도 모차르트 오페라의 아리아와 2중창을 중심으로 꾸미면서 옛 추억을 강하게 환기시켰다.

6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가진 바바라 보니./고양문화재단 제공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간간이 호흡이 부치거나 탄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보니 특유의 우아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코시 판 투테》에서 자매가 변치 않는 정절을 자랑하는 이중창으로 문을 열고, 흔들리는 사랑 앞에서 괴로워하는 이중창 〈검은 머리를 택할래〉로 끝내는 구성도 위트 넘쳤다.

1부가 보니의 화려했던 옛 영화(榮華)를 보여줬다면, 그리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선사한 2부에서는 2000년대 들어 가곡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보니의 진지함이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별다른 꾸밈 없이 길게 끌고 가는 보니의 목소리는 여운이 길었다. 피아니스트 앨리스데어 호가드는 상상력을 통해서 건반 하나로 관현악을 모두 표현해야 하는 오페라 반주보다는, 곡의 운치까지 담아내는 가곡 반주에서 훨씬 안정적이었다.

2004년 이후 6년 만의 내한공연에서 보니는 정점을 넘긴 성악가가 어떻게 정상에서 내려가야 하는지 모범 답안을 보여줬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펼쳐보이고, 진지하면서도 개성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본 공연시간은 줄이더라도 앙코르는 넉넉하게 담아주는 '경기 운영'까지 모두 그랬다.

지난해 해외 유명 성악가들이 잇달아 내한하면서 지나친 고가(高價) 티켓과 그에 못 미치는 공연 내용으로 실망을 안긴 것에 비하면 이날 공연은 영양가와 순도 모두 훨씬 높았다. 보통 한 작곡가의 가곡이 모두 끝난 뒤 몰아서 박수 치는 관례를 감안하면, 2부에서 가곡 10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이 일일이 박수를 보낸 건 지나치게 잦은 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