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협연, 무대 위의 충돌사고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2.17 22:42 | 수정 : 2010.02.17 22:43

번스타인과 '기싸움' 하다 공연 망쳐 은퇴한 굴드…
듣기엔 완벽한 카라얀 명반 연주자들은 "끔찍한 녹음"

협주곡의 해석을 놓고 정면충돌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왼쪽)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 소니 클래시컬 제공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그런데 1악장부터 지휘자는 악단이 아니라, 협연자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지휘자가 피아노 뚜껑에 손을 올려놓는 건 물론이고 독주자를 쳐다보면서 박자를 젓기도 합니다. 분명 지휘자와 협연자 사이에 '이상(異常) 징후'가 생긴 것입니다. 협연하는 동안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는 서로 말을 할 수 없고 연주를 중단하는 경우도 좀처럼 없기 때문에 관객은 이를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음악은 축복이 아니라 때때로 재난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안전장치는 있습니다. 연주가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케스트라는 지나치게 개성이 강하거나 사고뭉치인 연주자를 협연자 명단에서 미리 빼버리고, 협연자는 그런 악단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분쟁의 소지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1962년 4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습니다. 당시 뉴욕 필하모닉의 리허설에서 번스타인은 굴드의 박자가 지나치게 느리다고 주장했지만, 일단 굴드의 주장에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연주 당일에 번스타인은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뭐랄까, 정통적 연주와는 조금 다른 연주를 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굴드씨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번스타인은 "협주곡에서 누가 대장인가, 독주자인가 아니면 지휘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날 협연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고,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2년 뒤 굴드는 무대에서 은퇴하고 평생 스튜디오에서 은둔하며 음반으로만 대중과 만났지요.

듣는 이에게는 최상급 명연(名演)으로 보이는데, 정작 연주자들은 불만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첼로)가 지휘자 카라얀과 협연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 음반입니다. 수십 만장이 팔려나가며 당대 최고의 명반으로 꼽혔지만, 훗날 리히터는 자서전에서 "카라얀은 자신의 스케줄이 바쁘다며 우리를 짜증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마쳐야 했다. 끔찍한 녹음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오이스트라흐와 리히터는 한 번만 더 연주하자고 청했지만, 정작 로스트로포비치는 카라얀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답니다.

교통사고가 대부분 그러하듯, 연주회장에서의 충돌도 '상호 책임'인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의 원제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듯, 악단과 독주자는 일방적인 종속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연주자들은 난폭운전의 피해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돌아간다는 점만은 부디 잊지 마시기를.